속도보다 방향
레슨 중, 선생님은 갑자기 책을 덮더니 차갑게 말했다.
그날 나는 레슨 도중 쫓겨났고, 얼어붙은 뉴욕의 겨울은 그 말처럼 차가웠다. 유학 첫 해, 아직은 낯선 뉴욕의 어딘지 모를 선생님 댁에서였다. 그날 나는 음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러시아 출신의 선생님은 내가 다니던 음대에서 명성 높은 교수였다. 수많은 탁월한 연주자들을 배출한 그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그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자신이 길러온 제자들처럼 나 역시 뛰어난 학생일 거라고 믿으며 흔쾌히 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기대가 나에게는 곧 짐이 되었다. 매 순간 ‘그의 제자다운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매 레슨마다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완벽함을 따라잡기 위해 애썼지만, 점점 숨이 막혀 갔다.
매주 새로운 곡을 받아들고, 밤낮 없이 연습했지만, 언제나 충분치 않았다. 한마디 틀리기라도 하면, 선생님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곧 레슨은 끝나버렸다. 그날도 나는 무척 열심히 연습해 갔었다. 다만, 선생님 앞에서 완벽하게 암기하지 못했을 뿐.
나는 그렇게 빠른 아이가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보다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쌓아가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나에게, 선생님의 방식은 '방향보다 속도'였다. 다른 제자들은 어떻게 그 모든 미션을 해냈던 걸까?
위축되었다. 부족한 자신을 채우기 위해 배우는 과정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보다, 점점 비참하게만 느껴졌다. 선생님의 태도는 마치 '이미 잘 다져진 학생'들 만이 자신의 이름을 빛낸다는 듯,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계의 아이들이 모여 경쟁하는 그곳에서 간신히 1년을 버티고 나서야, 나는 용기를 내어 선생님을 바꿨다.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교수’ 대신 ‘강사’로 바꾼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선생님은 내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힘든 경험이 과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아니면 상처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나 같은 학생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했다.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음악인으로써의 삶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었다.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 선물 같은 일이기에.
그 분의 방식은 빠르고 완벽한 결과를 요구했지만, 나는 조금 느려도 과정의 깊이를 중시하는 학생이었다.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나는 결국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로 느끼며 자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이에겐 좋은 선생님이 나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나의 미숙함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그 선생님의 엄격함 뒤에 어떤 기대가 숨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지에서 나온 나의 선택이 상처가 되었으니까. 그분은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그때는 그저 아프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생님을 통해 분명한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을 단순히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로 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적 여정을 함께하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어떤 가르침은 사랑으로 남고, 어떤 것은 상처로 남는다. 특히나 예술에서 학생이 그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실수를 용납하고, 격려와 신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칭찬과 격려 없이 결과만을 강요하는 방식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피아노를 잘 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잘 가르치는 것과 잘 길러내는 것 또한 다르다.
'잘 길러내는 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양육에 가깝다.
양육은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며 돌보고 이끌어주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관계와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다. 사랑 없이 누군가를 길러내는 일은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양육은 단지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응원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승도, 좋은 엄마도, 그리고 좋은 배우자도 결국 함께 성장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 과정에 서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가 함께한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기쁨과 따뜻함으로 남길 바란다.
우리는 종종 터치, 미소, 친절한 말,
경청, 솔직한 칭찬, 또는 작은 배려의 행위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소평가합니다.
_ Leo Buscaglia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