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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송 Nov 07. 2024

니 마음 모를 것 같아?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설거지하는 등 뒤로 딸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치기 싫어?"

"아니..!"


표정은 딱 치기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레슨을 받는 도중 선생님이 물었다.


"뭐 속상한 일 있니?"

"아니요..."


사실은 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날이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마음은 속일 수 없다.  


건반을 누르는 손끝의 감정이 소리를 타고 흘러간다.  

건반을 누르는 마음가짐과 정성에 따라 터치의 속도와 깊이가 달라지고,  해머가 현을 때릴 때 음색도 미묘하게 변화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색은 듣는 이의 마음까지 울린다.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는 환희 속에서 연주할 수 없고,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쇼팽 <즉흥 환상곡>을 어두운 마음으로 담아내기 어렵다. 우울함과 동시에 담담한 위로가 묻어나야 하는 비창 소나타의 2악장을 기쁜 마음으로 연주하기란 불가능하다.


연주자는 작곡가가 작품에 담은 감정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청중에게 온전히 전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소리는 언어가 없어도 언어가 되며, 비록 직선적이지 않지만 외면할 수 없는 대화가 된다.


소리는 귀를 통해 전달되지만,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마음이다. 소리는 이미 사라졌어도, 마음에 남는 여운은 때로 한순간, 때로는 평생 남는다.  단순한 소리에 마음이 실리면 그 소리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어릴 적, 계단을 올라오는 아빠의 발소리만 들어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올 아빠의 표정이 상상이 되었다. 발바닥에 실린 무게에 따라 들리는 음색도 달랐으니까.


식탁 위에 숟가락을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

요란하게 설거지를 하는 소리

문을 쾅 닫는 소리


이런 소리를 내면 가족들은 나의 눈치를 살핀다.


'기분이 좋지 않나?', '화났나?',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내 소리에 가족들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 나쁜 불씨가 되어 서로의 마음에 불을 지를 때도 있다.


"왜 문을 쾅 닫아!!! 기분 나쁘게!"

좋지 않은 마음이 실린 소리의 힘이다.


반면,


편지지 위를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간식을 주려고 아이 방을 노크하는 소리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소리


이런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가족들에게 편안함과 애정을 전한다. 콧노래가 들릴 때면 미소가 번지고, 연필이 사각거릴 때는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노크 소리에는 배려가 담겨 있어, 문을 열 때부터 반가움이 피어난다. 이렇게 기분 좋은 소리들은 말없이 집 안을 사랑과 평온으로 채운다.




소리 속에 담긴 감정은 그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이 거칠고 감정이 분주한 순간에도,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돌려본다. 언어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전할 수 있다는 것을, 피아노가 가르쳐주었기에.



삶의 소리가 내게 다가올 때, 나는 마음으로 듣는다.  

들리지 않는 언어로,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침묵할 수 없는 것을 침묵하게 만든다.

_빅토르 위고




건반 밖 엄마,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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