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송 Nov 21. 2024

얼굴 보고 얘기하자

'안다'는 것


“어디 봐, 어디 봐…! 악보 보고 쳐야지!”    


어릴 적, 레슨 선생님께 늘 듣던 소리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악보대 위에 펼쳐진 악보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아이들의 눈은 늘 건반에만 머문다. 새로운 곡을 처음 받아 든 며칠은 악보에만 매달린다. 검고 흰 콩나물 대가리들을 읽으며 고군분투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껴지면 악보를 멀리한다. '이 정도면 알겠다' 싶어서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정확히 움직이는 데 급급해, 정작 중요한 악보는 쳐다볼 새도 없다. 건반을 보며 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치는 것이 잘 치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틀리지 않고 치는 것’이 잘 치는 것일까?

틀리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음정만 정확하면 되는 것일까?     



악보에는 단순한 음정 이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작곡가는 악보에 자신의 의도와 감정을 한 음 한 음, 하나의 기호까지 담아낸다. 빠르기, 셈여림, 쉼표, 이음줄, 음악 용어들… 악보는 단순히 콩나물 대가리의 높낮이가 아니라 작곡가의 생각이 기록된 이야기책이다.

그렇기에 악보를 제대로 읽으려면 질문해야 한다.     


"왜 이 기호를 이렇게 썼을까? 왜 이 쉼표를 여기 넣었을까?”     


이 질문은 곡의 표면을 넘어 작곡가의 마음과 의도를 헤아리게 한다. 눈에 보이는 기호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악보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악보를 찬찬히 읽고 작곡가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이야말로 곡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잘 치고 싶다면, 틀리지 않고 치고 싶다면, 작곡가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결국, 음악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관계’란 곧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만남의 본질은 상대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알아가는 데 있다. 그 과정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종종 문자나 메시지로 대화를 대신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 텍스트는 상대의 눈빛이나 표정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이모티콘을 덧붙이고, 어조를 유추하며, 마음을 전하려 애쓴다. 그러나 직접 만나 눈을 마주치고 나누는 대화는 그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품는다. 악보를 읽으며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리듯, 상대의 표정과 말투, 숨겨진 감정까지 읽어낼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경청할 때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 관계가 음악처럼 아름답게 흐르게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이나 겉모습을 아는 것을 넘어선다. 마치 악보의 음정만 읽는 것과 작곡가의 의도까지 이해하는 것이 다르듯, 관계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그 사람의 진정한 이야기를 알 수 없다. 악보 속 기호 하나하나에 질문을 던지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런 질문은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단순한 표면의 모습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를 헤아릴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을 깊이 알 수 있다. 때로는 상대방이 직접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악보 속 숨은 메시지를 찾아야 하듯, 그들의 말과 행동 속 작은 힌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한숨 속에 담긴 무거운 감정, 말끝의 떨림에 담긴 두려움, 혹은 웃음 속에 숨겨진 불안함… 이러한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감과 이해의 시작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마음이었구나.’  

 

악보 속 작곡가의 이야기를 읽는 연습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악보를 대충 보고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는 오래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진심을 놓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작고 소중한 기호들을 알아차리기 위해 눈을 맞추고, 마음을 열어 연습해 본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




악보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그냥 충실히 읽는다.

_ 클라우디오 아라우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도 산을 넘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