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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송 Dec 05. 2024

돈 잡아먹는 피아노

가치를 찾는 용기

피아노를 배우며 나는 종종 내가 돈 잡아먹는 귀신처럼 느껴지곤 했다.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쏟아부은 돈이 어마어마했으니까.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한 순간부터 엄마는 월급을 받으면 헌금과 레슨비부터 따로 떼어놓았다. 새 돈으로 바꿔 흰 봉투에 넣어 서랍장 맨 위칸에 고이 간직하던 모습이 선하다. 매주 레슨 갈 때 그 봉투를 꺼내어 주실 때마다 나는 묘한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레슨비가 아깝지 않게 매번 충실히 연습하고 레슨을 잘 받았던 건 아니었다. 실수라도 한 날이면 피 같은 돈을 허공에 날린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부모님의 희생을 생각할 때마다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 한다는 압박이 더해졌고, 그 미안함은 결국 부담감으로 자라났다.


부담감은 부모님의 사랑조차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했다. 사랑으로 주어지는 헌신을 나는 '보답해야 할 은혜'로만 여겼다. 엄마가 월급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며 눈치를 봤고, 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움츠러들었다. 무엇보다, 나만 그런 혜택을 받는 것 같아 동생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였을까? 동생이 가끔 질투심에 화를 낼 때조차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미안했으니까.


좋은 성과가 부모님께 드리는 나름의 보답이었다. 하지만 성과와 기대가 반복되면서 나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결국 유학을 결심했고, 차원이 다른 물질적 부담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유학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짐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를 꽉 채워 놓고 방 안에 앉아 있는데, 거실에서 엄마의 걱정 소리가 들렸다.

"학비를 대줄 수 있을까."  

그 순간 짐을 풀고 유학을 포기하는 것이 효도인지, 아니면 떠나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효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떠났다. 부모님은 부족함 없이 모든 과정을 채워 주셨고, 그것은 기적이자 감사였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한화가 달러로 환산되는 순간, 부모님이 보내주신 돈은 턱없이 적어 보였다. 나는 먹는 것에서 가장 많이 아꼈다. 학교와 집만 오가며 도시락을 싸고, 아침에는 학교 앞에서 가장 싼 베이글을 사 먹었다. 그래도 그 베이글은 내가 먹어 본 어떤 베이글보다도 맛있었다.


유학 동안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말고, 최대한 아껴 쓰고, 빨리 졸업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내 모든 선택의 기준은 '돈'이 되었다.


귀국한 후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돈을 들여야만 가치가 배가 되는 것들도 많았다. 유한한 시간, 시야를 넓히는 배움, 그때 아니면 할 수 없는 기회들. 나는 망설이다 많은 기회를 놓쳤고, 그 선택들이 모두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아쉽다.






이제는 알겠다. 돈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은 무한하다는 것을.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돈보다 마음을 택하고 싶다. 더 이상 부모님의 사랑에 죄책감을 느끼는 어리석은 딸로 남고 싶지 않다. 돈 때문에 망설이며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가 얼마나 컸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돈과 바꿀 때 오히려 더 풍성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돈은 중요하지만, 인생의 모든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나의 마음, 나의 배움, 그리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이루는 진짜 밑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

돈보다 더 값진 것을 위해 마음을 다해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야 그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다.

프렌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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