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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가 나타났다

육각형 인재

by 상가잘

나는 개업한 지 한 달 된 공인중개사다.

매물 작업하러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소개해드릴 매물도, 손님도 없다.

계약이 없으면 수입도 없으니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잠깐씩 쏘카 핸들러 부업을 한다.

쏘카를 빌린 고객에게 차를 가져다 드리거나 고객이 반납한 곳에서 지정장소로 가지고 오면 된다.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지만 지금 내 상황에는 맞는 부업이라 핸들러로 일한 지도 꽉 채워 두 달이 넘었다.


한 달 넘어가고, 두 달째 되니 요령이 생겼다.

퇴근시간 이후 보단 새벽시간대가 효율이 좋다.

거리에 따라 처음 요금이 책정되는데 경쟁자가 많은 시간엔 많이 튀겨 먹지 못한다.

처음 책정된 금액에서 지원자가 없으면 오백 원, 천 원 이렇게 올라가는데 이것을 튀겨 먹는다고 한다.

퇴근시간 이후엔 많이 못 튀기는데 새벽시간엔 빵빵 튀겨진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람직한 습관이 있다.

새벽에 4시쯤 깨도 다시 잠이 들지 못한다.

피곤하게만 하는 안 좋을 것 같은 나의 이러한 성질이 쏘카판에선 엄청난 장점이 되었다.

기본 거리요금인 4천 원 짜리도 새벽엔 만원이 넘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난 새벽에 2,3건 정도로 목표금액 2만 원을 채우고 일찍 귀가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새벽시간 의정부 쏘카왕은 나였다.

의정부 지리를 다 알고 있고, 그간 쏘카핸들 경험으로 내 예상 가격을 정해 최적으로 튀겨먹으며 아주 효율성 있게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주 주말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원래 주말은 경쟁자가 많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핸들 잡는 내역을 보고 난 뉴비가 왔다고 직감했다.

이건 해본 사람만 아는 설명하지 못하는 그 느낌이 있다.

예상했던 우려는 벗어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선 핸들감정평가사라고 자부했었는데

수많은 핸들수행으로 쌓아놨던 내 가격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 뉴비도 잠이 없었다.

새벽에 최소 8천 원짜리를 뜨자마자 4천 원에 가주는 정직함도 지녔다.


'이건 돌아오는 핸들이 없으니 못 잡겠지?'


라고 생각해 적당히 튀겨서 하려는 것도 언제 하고 왔는지 또 가져간다.


천재는 피하라고 했다.


나는 핸들시간을 바꿨다 출근시간이 끝나면 새벽정도는 아니어도 또 튀겨지는 시간이 있다.

나는 출근 겸 현장 이동 할 겸 핸들을 하기로 했다.


뉴비가 퇴근을 안 했나 보다

점심시간, 퇴근시간 가리지 않고 이틀 동안 활개를 치고 다닌다.

덕분에 난 어제는 오천 원, 오늘도 오천 원을 벌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일도 안 가리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요즘말로 핸들러가 지녀야 할 소양을 전부 갖춘 육각형 인재다.


감탄만 할게 아니다.

어떻게든 오늘은 목표금액을 늦게까지 하더라도 채워야겠다 생각했다.

퇴근시간에 맞춰 근처에 장거리 핸들이 있다.

포천으로 가는 건데 시간은 걸려도 이거 한방이면 목표금액은 채운다.

장거리 콜은 경쟁이 심해 뜨자마자 사라진다.


사천 원짜리 튀기는 동안 심드렁하게 있었던 재야의 고수도, 육각형의 뉴비도 이 핸들을 노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도 노련한 핸들러다.

새로고침을 연타하며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잡았다.. 내가 잡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정말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나는 개업한 지 한 달 된 개업 공인중개사다.




포천에서 32분 뒤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타고 오는 한 시간 동안 작성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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