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이 한 몸이었던, 내 과거를 탈피하는 이야기.
혼자라서 행복해 보여.
누군가는 믿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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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독감 같은,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가벼움’은 아니었다.
이는 내 삶의 선택지에 없었던 ‘강제 옵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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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유난히 바스락 거리며 밟히던
가을의 어느 오후.
나는 한 건물 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판을 보며
내 심장은 사춘기 소녀처럼 매우 수줍고도,
열정적으로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먼지 하나 없이, 모두 털어내고 나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소박하게나마 한 줌의 희망을 품은 채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저벅저벅, 끼-익.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울LEE님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녀는 추운 겨울, 꽁꽁 언 몸을 스르륵 녹여주는
장작불 같은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곧 시작될 상담을 위해, 녹차 한 잔 마시면서
편안히 마음에게 쉼을 주고 계셔 보세요. “
조금 뒤, 그녀는 나를 상담실로 오라 했고,
쭈뼛쭈뼛. 아니 어쩌면 너무나 갈망했었던.
내 안의 봉합되지 못했던 상처들을 보듬고
새 살이 돋게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설레는 발걸음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마주한 나.
그녀는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여울LEE님 반갑습니다. 오늘은 편안하게
그 속에 있는 어떤 얘기라도 좋습니다.
제가 천천히, 자세히 들어드릴게요.
어떤 마음에서 상담을 오게 됐을까요? “
그녀는 내 마음속에 있는.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아주 어두컴컴하게, 몇 천 가지의 자물쇠들로
막아놨던 경계선을 너무나 가뿐히 풀어버렸다.
그녀와 나는
깊이-깊이, 한 인간이 지닌
고민의 터널을 지나오며.
결국
끝자락에 숨어있던 한 아이를 찾아냈다.
“여울LEE님 안에 있는 그 아이.
그 아이가 몇 살이죠? “
나는 답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홉 살입니다. “
그녀는 내게 그때의 그 아이가 겪었던
아픈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었는지 물어왔고.
나는 파르르 떨려오는 입술과
금방이라도 톡-하고 흘러내릴 것만 같은
찰랑이는 과거를 정신력으로 붙잡으며 대답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말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아인.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 아인.
그 아이가 아직 여울LEE님 안에 여전히
그날에 멈춰서 머물러 있어요.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아픔이 돋아나는데,
이젠 아홉 살의 불행했었던 여울LEE를
잠시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자고요. “
라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찰랑이던 과거를
광대뼈 아래로 마구 흘려보내고 있었다.
과거의 상처가 저렇게도 힘 없이
나약하게 주르륵 흐르는 가벼운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내게 다시 물어왔다.
“자, 눈을 감고.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곳에 데려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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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넓은 정원에, 초록의 싱그러움이
불어오는 바람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곳.
그 중앙엔 낡았지만 따스함을 품고 있는
‘정겨운 오두막’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곳에 있는 어린아이. 아홉 살의 여울LEE는
어떤 것 같아요? “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어린 나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마주하면 더 왈칵-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을
엉엉 울며 쏟아낼까 봐.
그런데.
어린 아홉 살의 내가, 저 멀리서 웃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까르르 웃으며 춤을 췄고,
한 손에 쥐고 있던 붓으로 캔버스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웃고 있어요.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자유로워 보여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평화롭고, 불행이란 단 1g도 없어 보여요. “
나는 이 말을 뱉어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아이가 행복해 보여서 흘리는 안도의 눈물.
그 아이가 진정 바랐던 게 이런 거였으리라,
미안함의 눈물이 섞여 나왔다.
그녀는 내게 어린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해줘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오두막 속 그 아이를 불렀다.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나를 봐주는 그 아이.
나는 말했다.
“수고했어. 넌 여태까지 용감하게 버티고 버텨서
이겨낸 거야. 대단해. 칭찬해. 아주 많이. “
그 아이는 내 말에 그냥 옅은 미소만 보였다.
그녀는 말했다.
“진짜 해주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닐 텐데,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
쿵쾅-두둑!
내 심장에 아주 날카로운 화살이 박힌 것처럼
저려왔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앞이 흐렸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얘기했다.
“미안해. 혼자 외로웠었지. 못 챙겨줘서,
보호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미안해.. “
나는 이 말을 그 아이에게 전했고,
아이는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너무나 찬란하게.
아름다운 눈물을 흘리며, 웃어주고 있었다.
‘괜찮아. 이제라도 날 이곳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난 이곳에서 행복하니까
괜찮아.‘라고 말하듯 말이다.
나는 잠시 그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목 놓아 울어버렸다.
그녀는 말했다.
“그렇죠. 사실 그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진심이었을 겁니다. 어른들이 여울LEE님에게
해줬어야 할 말이기도 하고요. 어때요.
이젠 저 아이가 더는 불행해 보이지 않죠?
정말 날아갈 듯 행복한가 봐요. “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이젠 저 아이 혼자
저 아름다운 곳에서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게 어떨까요. “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혼자라서 외로우면 어떡하죠.. 걱정 돼요..”
그녀는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저 아인 저곳이 훨씬 안정감 들고,
행복할 거니까요. “
나는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연신 닦아내며
오두막 그 아이를 보내줬다.
즐겁게 인사하고 뒤돌아 뛰어가던 그 아이.
난 정말 마지막임을 깨닫곤,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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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중, 나는 ‘아이 어른’이었다.
어릴 때 오히려 어른스러웠고, 제 또래들처럼
지내지 않고 어른처럼 세상에 맞서
날아오는 불필요한 날이 선
파편들을 숨 죽이며 방어해야 했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된 현재까지도
그림자처럼 한 몸으로 덕지덕지 붙어있던.
무거운 과거를 이렇게 떼어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결과였다.
/
나는 내게 말해주고 싶다.
“혼자라서 오히려 행복해 보여.
누군가는 믿지 못할지라도 말이야. “
••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올리는 글로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얼마 전. 심리상담센터를 다녀온 뒤
깨질듯한 충격을 받으며, 어릴 적부터
어른인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됐었던
일이 떠올랐었습니다.
무거운 상처를 걷어내고,
조금 더 내면이 단단한 저로 변하게 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들께서도, 각자가 지닌
아픔이나 상처가 있으실 수도 있는데
읽으시면서 공감과 위로, 용기를
전해드리고자 했던
제 마음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만나겠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나날이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