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야 말로 감독이고, 양현종이야말로 에이스며, 김선빈이야말로 타자였다. 김도영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구장의 외야석으로 홈런을 날렸고, 포수 김태군은 철벽같이 홈베이스를 지켜냈다.
올 해는 야구볼 맛이 났다. 우리가 응원하는 기아타이거즈가 줄곧 1위를 수성하고, 6~7회까지 지다가도 약속의 8회, 9회라는 말을 실감하는 역전승도 유난히 많았다. 하위권 팀에게 어처구니없이 승리를 헌납하다가도 바짝 쫓아오는 2위와의 경기는 부숴버리는 날들의 연속. 호랑이 엉덩이 만지려다 호되게 당한다는 '호랑이의 저주'라는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며 팬들의 흥을 제대로 돋웠다.
화수목금토일
야구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야구 중계방송이 배경으로 깔린다. 내가 켜지 않으면 딸들이 말한다. 엄마 야구 안 봐?
숙제하기 싫은 사춘기 첫째의 꼼수와 자기 만화만 봐서 미안한 둘째의 통 큰 배려랄까.
엄마가 야구(보는 것)를 좋아하니 아이들도 관심을 갖는다. 질문도 늘어간다(내가 영어를 좋아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같은 홈런인데 왜 이 홈런은 3점이야? 그럼 10점 홈런도 있어?
아니 아니, 최대 4점이야. 주자가......
투수는 왜 공 안쳐?
우리나라에서는 투수는 공만 던지는데, 메이저리그-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도 타순에 들어가.
야구는 크고 작은 규칙이 많은 섬세한 스포츠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야구 관련 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었다(엄마보다 더 잘 설명해 줄 거야.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야.알.못에게 추천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읽기 좋아요^^(표지출처: 알라딘)
2년여간 뉴진스에 빠져있다가 시들어지는 찰나, 큰 아이에게 제대로 꽂혔다.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슈퍼스타 김도영의 등장도 한몫. 방 문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아이에게 오늘은 기분이 어떠신가 살피며 말 붙여야 하는 치사빤스스런 날들이었는데. 이런 날도 오는구나. 야구가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구단 유튜브 채널도 같이 보자 하고, 야구 규칙이나 소식들을 알려준다.
엄마 포볼은 일본식 표현이고 볼넷이 맞는 표현이야
김도영 기록이 정말 대단한 거네. 40-40 꼭 하면 좋겠다.
공부를 좀 그렇게 해봐라는 말은 고이 접어 두고, 아 정말? 엄만 몰랐네 하며 그간 쌓인 벽을 허물어본다.
엄마는 언제부터 기아 응원했어?
어렸을 때 기억 한 조각. 일요일 오후 TV앞에 느긋하게 누워 야구경기를 본다. 이종범 선수가 도루에 성공하며 포효하는 순간,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지른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 야구선수는 이종범, 그가 속한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전신)는 나의 팀이 되었다. 중고등학교시절 배구(삼성화재신진식 선수), 농구(고대 전희철 선수), 축구(수원삼성 고종수 선수)를 거쳐사는 게 바빠 스포츠에 뜸하다가 시가에 합가 하면서 야구광을 제대로 만났다. 이것은 필연이었던가. 아버님도 타이거즈 팬. 야구에 'ㅇ'도 모르시는 우리 어머님은 만날 공놀이만 본다고 툴툴하셨지만 "오늘 기아는 어디서 중계냐"하며 채널 돌리시는 아버님께 "오늘 광주경기는 비 와서 우천취소됐어요."라고 답변하는 며느리는제대로 쿵짝이다.
"엄마, 할아버지도 천국에서 야구 보고 계시겠지?" 지난 3월 천국 가신 아버님과의추억을 떠올리며 딸들과 야구를 본다.
우리도 야구장 한번 가보자
야구는 집 TV로 보는게 제일 잘 보인다는 지론을 가진 남편도여자 셋의 성화는 이겨내질 못한다. 기아의 고척돔 원정 경기 예매에 돌입. 평생 야구를 봤지만 예매는 처음인 남편은 경기장 좌석부터 공부하고, 딸들과 나는 경기 보며 뭐 먹을지 신나게 메뉴를 짠다. 두둥 드디어 예매당일. 최다 관중 돌파 시즌인 만큼 예매가 쉽지 않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인터넷 접속 창의 대기 번호가 천 단위다. 그 아래에 재접속시 대기순서가 더 밀릴 수 있다는 문구에 숫자가 줄어들기만을 마냥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다. 뜨는 예매 창 순서에 맞게 인원수 체크, 할인 선택, 좌석 선택하고 동의를 누르고, 이제 됐나? 하는데 선택할 수 없는 좌석이란다. 엥? 다시 다시. 서둘러처음부터 클릭 클릭. 그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좌석들이 거의 없다(정신없이 해본 예매라 실제 예매순서와 다를 수 있음). 결국 매진.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린 예매의 순간은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허무함과 아쉬움에 예매창을 보고 또 보니 시즌권 소지자부터 선예매를 하는 시스템이다. 안 그래도 팬 많은 기아, 무더운 한여름 시원한 고척돔 경기를 기다린 사람들은 우리뿐이 아니겠지. 야구장 한번 안 가본 우리도 가보자 마음먹었으니 예매경쟁이 오죽하랴. 고척돔 원정경기 당일, 치킨과 맥주를 시켜 에어컨 빵빵히 틀고 집 TV로 야구를 본다. 역시 집에서 보는 야구가 제일이라며.
엄마는 누구 사인받고 싶어?
내년엔 10 구장 다 가보자는 큰 아이. 김도영 유니폼 사고 싶다고 노래에, 사인을 꼭 받겠다며 나에게도 묻는다. 마음 같아서는 풀세트로 다 받고 싶지. 팀을 향한 사랑과 투지를 보여 준 제임스 네일(이런 외인 어디에서도 못 봤습니다), 포커페이스로 시원하게 삼진 잡아내는 전상현, 특유의 큰 몸짓으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야구열정만큼은 최고인 박찬호(메이저 출신 투수 말고요^^ 실력도 인정합니다.), 떠오르는 루키 곽도규, 김도현, 황동하 등등. 그래도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양현종 선수이다.
"우리 팀에 누구 있다고?"
대망의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승 후 양현종 선수의 세리모니이다. 기아팬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팀의 에이스이자 베테랑, 그가 걷는 길이 KBO의 역사가 되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출처: "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위의 칼럼에서 언급됐듯이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빠져 앉지 마." 하며 도망가지 않고 승부를 했던 투수 양현종. 오랜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기 위해 녹록지 않은 상황을 감내하며 도전했던 루키 양현종. 안타깝게도 메이저리그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그 도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철인 양현종. 그도 이제는 세월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공의 구속이나 구위는떨어졌지만 노련함으로여전히 선발투수로서건재하고, 최고참 투수로서 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출처: 기아구단 유투브 "갸티비" 영상
기대 이하의 투구를 하고 낙담하고 있는 후배 최지민 투수를 불러 " 너 자신을 믿어."라고 조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그 날. 마운드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따뜻한 눈빛과 온화한 표정에서 후배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은퇴해도 기아 타이거즈 코치로, 감독으로 후배 선수들과 함께 할 그의 미래가 그려져 팬으로서 흐뭇했던 순간이다.
양현종 선수, 광주에서든 서울에서든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올해 양현종 선수가 선발일 때 김도영 선수가 안타 치고 홈런 치며 함께 팀의 승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내년 시즌도 기대할게요.
안녕, 양현종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유머는 담지 못했지만,
한 방의 강렬함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대소설가인 하루키와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제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니,
신나서 적어보았습니다.
취미도 본업같이 즐기는 하루키 씨,
저는 일단 즐기며
야구보고 우쿨렐레도 튕기고 글도 쓰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본업처럼 잘하는 날이 오겠지요.
하루키 씨 덕분에, 서. 서. 모임 덕분에 '잡문집'을 즐겁게 읽고, 글도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