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곁을 스쳐가는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임기제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직장에 머문 한 친구가 떠나는 마지막 날, 한 사람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 슬픈 일이야.
인연에 대해서 먼 훗날에 대해 어떻게 될 것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고, 또 단언할 수도 없겠지만,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 순간 직감하게 된다.
이 사람과는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이것은 연인사이의 대단한 이별과는 확실히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수많은 이별 속에 살고 있다. 우연히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안녕을 맞이한다.
그게 마지막이었음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시간이 지나 기억이 어렴풋하기까지 하다.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언제 만났던가? 누구였었지?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다시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연락을 이어가야 하고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실 그 많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그럴 수도 없거니와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적 이별을 택하게 된다.
하루키가 만난 이별은 여간 아쉬운 이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글은 도쿄 고쿠분지 역의 남쪽 출구에 있는 작은 빌딩 지하에서 재즈바를 하고 있던 어느 시절의 하루키가 만난 미국인 병사와 일본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판 좀 틀어주세요
가끔 가게를 찾았던 그들은 빌리 홀리데이 음악을 듣곤 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미국인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비가 내리는 가을, 레인코트를 입은 그녀가 찾아온다.
자기 대신 그 가게에 가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달래요.
본국이 그리울 때마다 하루키의 자그마한 가게에서 빌리홀리데이 음악을 들었던 그도 다시금 재즈바의 시절이,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도 그러했으리라...
하루키는 일본인 여성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녀에게 좀 더 멋지게 인사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글로 담아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루키도 마지막을 직감했다. 일상가운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영원한 이별, 그 수많은 이별들 가운데 기억에 남아있던 재즈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셋에게 모두 그리운 시절로 남았으니 그 정도면 놀랍도록 멋진 이별이 아닌가?
마침 빌리 홀리데이의 I'll be seeing you가 흘러나온다.
I'll be seeing you
다시 만날 거예요
In all the old familiar places
익숙한 모든 장소에서요
That this heart of mine embraces
All day and through
하루종일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그곳들
In that small cafe
작은 카페
The park across the way
길 건너 있는 작은 공원
The children's carousel
아이들의 회전목마
The chestnut trees
밤나무들
The wishing well
잘 있어요
하루키와 그들이 언젠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환하게 악수하며 그 시절의 단상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소하게 이별했던 사람들과 예기치 않게 맞닥뜨렸을 때, 옛 시절을 곱게 꺼내보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몇몇은 있기를 ㅡ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저 모른 척 지나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반갑게 이별을 유보하며 정겨운 인사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물론 누구나에게가 아니라 소수의 어떤 누군가에게...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맞이하는 일상의 마지막 단편들이 담담한 여운을 남길 수 있길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의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를 읽은 후
Billie Holiday의 I'll be seeing you 들으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