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강원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 너머로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집을 나서 5분, 10분만 달리면
이렇게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참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 좋은 오늘.
어디론가 가고 싶지만, 어디일지는 몰랐다.
그저 목적지 없이 달리다 보니,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가끔 그 고마움을 잊곤 했던 그 바다는,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파랗다.
햇빛은 쨍하지만, 바람은 살랑인다.
푸른 하늘에 조각조각 떠 있는 구름이
바다 위에서 그림처럼 퍼진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풍경이다.
날씨 좋은 날, 나는 조금 더 쉽게 웃는다.
《아따맘마》 속 아리 엄마처럼.
비 오는 날엔 괜히 우울해지고,
화창한 날엔 왠지 기운이 난다.
오늘 내 모습이 딱 그렇다.
우리 가족은 망상 바닷가 근처 잔디밭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활짝 열었다.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와~” 하고 소리친다.
그저 신난 아이들이다.
남편은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 펼치고,
나는 테이크아웃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편의점에서 산 간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우리는 분명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간식 배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햇살 아래에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쳤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커피를 들었다 내려놓을 때,
얼음들이 커피 사이를 오가며 나는 그 소리는
나만의 기분 좋은 ASMR처럼 들린다.
캠핑 의자에 반쯤 누운 남편은
다리를 다른 의자에 걸치고 있었고,
세상 편한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
그런 그의 다리 위로
개미 한 마리가 영차영차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책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다리에 개미!”
“어, 그래.”
남편은 무심하게 대답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물릴 것 같은데…’
다리털을 헤집고 오르던 개미는 끝도 없는 다리털
밀림에서 길을 잃은 듯, 허겁지겁 도망쳤다.
괜한 걱정이었다.
첫째 딸은 자기가 고른 책을 읽느라 푹 빠져 있었고,
둘째는 지루해졌는지, 누가 버리고 간 빈 페트병을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더니 아빠 다리에 있던 개미를
잡아 넣고는 “까르르” 웃으며 잔디밭을 신나게 뛴다.
작은 것에도 배시시 웃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참 순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트렁크에 반쯤 걸터앉아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바닷가 산책로 위로 씽씽카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
조용히 먼 곳을 바라보는 어른들,
누군가는 아이를 지켜보고,
누군가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아이패드 속 ‘토마토 스프’ 초안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글을 다듬는다.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가고,
짧고 거센 봄이 스쳐 지나간 뒤,
이제는 지독한 여름이 올 차례다.
그 직전에 닿은 이 살랑이는 바람과 맑은 하늘이
지금 이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든다.
아이패드와 수첩, 그리고 좋아하는 책 한 권.
그것만 있으면 어디든 나의 작업실이 된다.
꼭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하루는 아니다.
무계획으로 흘러간 이 하루의 장면 속에서,
나는 문득 내가 주인공이 된 영화의 한 장면 안에
잠시 머물고 있는 기분이다.
아직 ‘작가’라는 말이 낯설고, 내 것이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딘가 머물고 싶고,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