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역습, 칼이 되어 버린 희망
성인 남성의 묵직한 한 마디가 고요함이 켜켜이 응축된 집 안의 정적을 깨고 들려왔다.
남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현관을 향해 걸어갔고, 나의 눈은 굳게 닫힌 안방 문으로 향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보통의 날이었다. 아이를 영어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고, 집에 와서 함께 책을 읽고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며 문득 어제 다 끝내지 못했던 영어 숙제가 떠올랐을 뿐.
설거지를 끝마친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은 온라인으로 숙제를 해야 했는데, 한 두 달 정도면 숙제 독립을 한다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2년째 아이 옆에서 함께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시리이자 빅스비였고, 집사이자 비서였다. 숙제 알리미도 빼먹을 수는 없지.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고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부팅이 되는 사이 숙제 알리미는 아이에게 어제 못다 한 숙제를 마저 끝내라는 추가 알림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아이의 발작 버튼이 켜지며 나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육두문자 따발총을 정신없이 얻어맞아야 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아이로부터.
선전포고 없는 선제공격에 무방비로 당하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순간 내 손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야구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아이의 무차별 폭격으로 얼얼해진 뒤통수를 만질 새도 없이 내 손에 들린 방망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아이의 엉덩이로 돌진했다.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방망이는 허공과 아이의 엉덩이 사이를 오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반쯤은 정신이 나간 채 대응 공격을 하던 내게 문 밖에서 그만하라는 남편의 외침 따위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껏 오냐오냐 키워서 애가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라고 절대로 말리지 말라고 남편에게 악을 지르며 나는 아이를 방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대여섯 대쯤 휘둘렀을까.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고는 아이의 입을 쳐다보았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아이의 항복 선언을 듣고 나면 못 이기는 척 방망이를 내려놓고 책에서 배운 대로 훈육을 하려던 참이었다. 이윽고 들려온 아이의 말은 모든 변수를 계산했다 생각한 내 플랜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에게 엉덩이 찜질을 당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한 프란시스코 페레의 말 따위는 이성 너머로 날려 버리고 휘두른 내 방망이의 위력이 고작 이 정도였다니.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뒤로한 채 성큼성큼 방 문을 열고 나간 아이는 아빠의 핸드폰으로 112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엄마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잠시 후 들이닥친 경찰관 두 명은 집 안을 휘적휘적 둘러보았다.
냉장고와 벽에는 아이가 영어학원에서 받았던 상장이 만국기처럼 걸려 있었고, 거실 한 복판에는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플라스틱 방망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두려움에 안방 문을 잠그고 나오지도 못하는 아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검사지와 처방전까지 확인한 경찰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그래도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보고 가겠다고 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나온 아이는 아까의 그 당당했던 패기는 어디로 가고 물에 홀딱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는 경찰관 앞에 섰다.
두 명의 경찰관이 아이를 구석구석 보더니 다음에 또 엄마에게 욕한다면 그때는 경찰 아저씨가 와서 잡아간다는 오피셜 한 으름장을 놓았다.
꼬리를 내리다 못해 바닥에 축 늘어뜨린 힘 빠진 살쾡이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관이 돌아간 후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고름이 터져 진물이 흘러내리는 가슴을 오래도록 방망이질했다.
'애정의 조건'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슴을 마구 쳐내던 채시라의 모습이 거울 속 나와 오버랩되었다.
그때는 드라마니 현실보다 극한 상황을 그려낸 것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뼈아픈 상황이 닥치니 정말 가슴을 치게 된다.
가슴팍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치고 또 쳐도 그 안에 탁 걸려있는 응어리는 도통 밖으로 튀어나올 줄을 몰랐다.
내가 휘두른 헛방망이질로 아이도 나도 생채기만 더 생겼을 뿐 누구도 흥건하게 웅덩이가 된 고름을 뱉어내지 못했다.
약물의 부작용을 혹독하게 학습한 첫날이었다.
아이는 진단을 받은 후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몇 달간 약물 복용을 하지 않은 채로 지냈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아이의 우울감은 커질 대로 커졌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 하에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첫 항우울제는 설트랄린정 25mg.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항우울제로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PTSD 등에 쓰인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대신 내가 먼저 복용해 보았다.
물론 처방 없이 복용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이에게 정신과 약물을 복용시킨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엄청난 용기와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날은 종일 속이 메스껍고 졸리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아에게 처방할 수 있는 극소량의 약물이었지만, 나에게는 거북하기만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약을 먹이기 전 남편과 나는 아이의 허락을 먼저 구했다.
우리는 초조하게 아이의 반응을 살폈고,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복용하고 난 후 불편함은 없는지 평소와는 어떻게 다른지 꼭 알려달란 말을 덧붙이며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약을 건넸다.
희망을 삼키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들려왔다.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보드게임에 지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지는데 실패해 불안해하고 있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지랄 대신 축하를 건넸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약이 있다니.
그동안 왜 망설였는지 후회가 되던 순간이었다.
나는 한결 부드러워진 아이 덕에 약물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얼마 뒤 ADHD 약물이 추가로 처방되었다.
악을 치며 소리 지르는 아이의 손에서 태블릿을 뺏어든 순간 아이는 내 손을 할퀴었다.
손톱 모양으로 그어진 빨간 줄 사이로 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
본래 감정기복이 있기는 했어도 길길이 날뛰며 소리치는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약한 약이라더니. 제일 낮은 용량으로 처방해 줬다더니.
아이는 이미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포효하고 있었고, 윽박지르기, 달래보기, 무시해 보기 등 각종 훈육 스킬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태블릿을 다시 넘겨주고서야 맹수의 눈빛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나와 남편은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약물 부작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괘씸하고 억울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꼴을 당하고 사는 것일까.
다른 아이들은 한 두 마디에도 바로 고쳐지는 것을 왜 나는 엎어지고 구르고 텀블링을 하고 별 짓을 다 해도 어려울까.
이미 그림자처럼 내게 딱 달라붙어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던 무력감이란 녀석이 뱀처럼 몸을 감고 올라왔다. 과연 아이에게 맞는 약물을 찾을 수가 있을까. 나는 그 과정을 다 견딜 수 있을까.
엄마, 나 죽고 싶어.
아침마다 5개의 알약을 삼키던 아이의 입에서 건조하고도 나지막한 음성이 힘겹게 흘러나왔다.
약물이 늘어갈 때마다 아이는 좀비가 되었다가 한계를 모르는 발광이가 되었다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안겨오는 어린아이가 되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아를 바꾸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 애정이 메말라갈 때쯤 아이 입을 통해 나온 그 말은 칼이 되어 내 심장에서부터 동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거치는 모든 혈관을 찔러대며 온몸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
마침내 그 말이 내 전두엽을 강타했을 때 나는 아이를 붙잡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