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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딸깍이 Nov 14. 2024

나는 만두다!

/ 자꾸만 터지는 만두 /

요알못인 나는 요즘 핫한 흑백요리사 못지않은 남편과 살고 있다.

그런 남편이 한 주간 집을 비우게 됐다. 어쩐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밀키트와 배달음식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늦은 금요일 퇴근길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으니 뭐라도 좀 해서 먹여야 하는데…

그나저나 주말 동안 뭘 해 먹을까, 뭘로 이틀을 버티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냉동실부터 뒤졌다.

추석에 만들어 두었던 마지막 남은 보물, 만두 한 봉지를 찾았다.

일단 이걸로 한 끼 해결하고, 주말에 만두나 만들어 두자.



만두소에 빠지면 섭섭한 돼지고기, 매콤한 신김치, 아삭함을 더해줄 숙주, 느끼함을 잡아줄 양파, 대파 그리고 부드러운 두부와 갖은양념들. 여러 가지 재료들을 손질하고 나니 한 냄비 가득이다.

만두소를 터지지 않게 꼭꼭 눌러 빚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기에 찌고, 식혀서 먹기의 무한반복.

내 배도 채웠고, 봉지봉지 소분한 만두로 냉동실 한 편도 채웠다.

당분간은 근근이 버틸 수 있겠군,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든든할 줄만한 알았던 딸둥이와 전쟁 중이다.

냉전과 휴전 그 어디쯤인 요즘.

그녀들의 기분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처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오르내린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예쁘기만 하던 시절은 잊힌 지 오래다.


언니둥이는 방에서 학원 숙제, 동생둥이는 친구들과 자전거 타러 나가고,

혼자 만두를 만들다 보니 잘 빚은 만두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각각의 재료들을 싸~악 감싸는 맛있는 만두.


나는 만두다.
자꾸만 속이 터지는 만두

지금 내가 만드는 만두소는 맛이 1도 없다.

‘핸드폰 좀 그만해, 빨리 일어나, 숙제했니, 책상 정리해, 뭘 잘했다고 울어, 머리 좀 감아,

초딩이 화장은 무슨 화장이야, 먹은 건 좀 부엌에 갖다 놔, 양치해, 책 좀 읽어…’

이런 것들로 만들어서 자꾸만 터지는 거겠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만두가 아니라, 딸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따뜻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감싸는 만두 같은 엄마가 되어 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럼 앞으로 만들 만두는 뭘로 채워볼까.

‘실수해서 속상했겠네, 숙제 많아서 힘들지 않아, 네가 식탁정리 도와주니까 설거지가 빨리 끝났어,

몇 시에 깨워줄까, 립밤만 발라도 예쁘네, 올영 갈까, 그 책 먼저 읽고 스포 쫌만 해줘, 오늘 카페 가서 수다 좀 떨어볼까…’

요래요래 만들면 터지지 않으려나.


속이 터지지 않는 만두를 만들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터질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만들다 보면 속이 꽉 찬 맛있는 만두를 만들 수 있겠지.

.

.

.

라고 다짐하는 순간, 부엌에서 만두를 맛본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만두가 싱거워. 만두는 비비고가 맛있는데…(구시렁구시렁)”

“(아오!) 잠깐 기다려, 초간장 맛있게 만들어 줄게.

“음~ 이제 맛있네.

그래? 그럼 내일 아침에도 만두 먹고 갈래? 근데 학원 숙제는 했니?”

“엄마, 쫌!




흔히들 사춘기를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깜깜한 터널 같다고 한다.

이제 막 그 터널의 입구에 들어선 딸들과 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의 변화, 학업과 진로문제, 친구관계 같은 것들로 언제 출구로 나와서 또다른 터널로 들어갈지 몰라도 언제나 나는 만두 같은 엄마가 되어 깜깜한 터널에서 함께 출구를 찾아 갈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왕만두 같은 엄마,

겉으로는 엄하고 무서운 엄마지만 마음만은 촉촉한 겉바속촉 군만두 같은 엄마,

사춘기 딸들의 말랑한 감성을 부드럽고 따듯하게 머금은 물만두 같은 엄마.


후~ 한숨 크게 들이쉬고, 주문을 외워본다.

“나는 만두다, 나는 만두다. 나는 만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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