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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Nov 04. 2024

친정엄마 화를 업고 튀어!

  황혼육아로 인한 친정엄마와 워킹맘의 웃픈 이야기.

솔아~~솔아~임솔~~!!

하고 부르던 선재의 다정하고도 사랑스러운 눈빛.  

그 달콤하고도 사슴 같은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 마흔짤 넘긴 아줌마는 하츄핑이 되어 사랑의 총알을 마구 허공 속에 쏘아본다. 하츄♡하츄♡ 선재야~


하지만 사랑스러운 선재 대신 업고 튀고 싶은 게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친정엄마의 火 화.

업고 튀면 좋겠지만 이것은 업고 튀는 문제가 아니다.

심청이가 되어 친정엄마의 화를 안고 풍덩!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한다.

소녀~어머니의 화를 잠재우겠나이다.


“엄마 오늘 일이 늦게 끝날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이 늦나?”

“모르겠어, 엄마 최대한 빨리 갈게”  뚝!

“엄마 저녁에 회식이 있는데, 지율이 쩜 재워줄 수 있어?”

“알았다!” 뚝!

“니는 지율이 간식도 안 사다 놓고 뭐 했노! 그라고 지율이 물병을 씻었으면 똑바로 해놓고 가야지. 어째 끼우는 기고! 안 끼워진다이가! 어이구 승질 나” 뚝!


경상도 호랑이띠 할머니는 무섭다. 화를 기본으로 장착한 확성기 목소리에 시간, 장소 상관없이 자기 할 말만 하시곤 여차 없이 끊는다. ‘통화는 간단하게’ 캠페인을 어찌나 철저히 지키시는지 전화예절 전도사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일하는 워킹맘은 당황 그 잡채...

친정엄마는 교도관, 나는 수감자가 되어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

“엄마, 미안해” 내 뱃살처럼 쭈그러진 목소리를 한 마디 남긴 채.


50년생인 친정엄마는 언니의 첫째, 둘째 손녀의 시간제 육아를 진즉에 끝내고 마지막 남은 막내딸의 손녀 육아를 자처하셨다. 육아휴직 중에도 입버릇처럼,

“지율이 걱정 말고 돈 벌러 가야지! 젊을 때 돈 안 벌어놓으면 언제 돈 벌어놓을래,  지율이 키울라믄 돈 많이 들어간다 아이가” 하고 늘 말씀하셨더랬다. 맞벌이를 하는 것이 바빠다 바빠 대한민국 사회의 불문율이었고 나 또한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암~능력 있을 때 부지런히 때 벌어야지.

그렇게 일하는 딸을 바쁘다 사회로 밀어 넣고 친정엄마에게는 육아의 반이 자연스레 넘어갔다.

+ 플러스 집안 살림과 함께.


1년 3개월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출산, 육아 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돌아가던 때에는 맞벌이가정으로

인해 황혼 육아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황혼 육아로 인한 뉴스가 하나 둘 나오며 가족 간 갈등에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기 시작한 때였다.  

출처:한국일보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 A2024050515280002654


가끔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바늘에 찔린 것 마냥 친정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연로하신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내 새끼만 바라보고 좋은 거 먹이랴, 깨끗이 씻기랴, 따뜻한 옷 챙기랴 고군분투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말이다.  

더구나 호기심 많은 만 1살은 눈 한번 깜박일 수도 없던 나이지 않은가.


친정엄마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퇴근하던 어느 날.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할머니의 화가 섞인 소리가 들렸다.

“어휴! 미친 X아~ 참말로 잡아 직일 X "  순간 멈칫.

‘이게 뭔 소리지?’ 설마 금쪽같은 손녀딸한테 하는 소린가? 육아의 힘듦에 나온 마음의 소리인가?힘들어도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욕을 해도 되나.' 애써 속상함을 뒤로한 채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마치 범죄현장 수사 나온 형사처럼.


이윽고 친정엄마의 말소리가 멈췄고 10초의 정적 후 내 속을 꽁꽁 숨긴 채 문을 열었다.  

 “지율아 엄마 왔네~”하는 경쾌한 친정엄마 목소리가 나를 맞이한다. (아니. 금방 욕하던 엄마는 어디 갔나?)

집안 분위기는 따스하고 평온했다. 나 혼자 꽁꽁 얼음이 되어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순간 나의 레이더망에 이상함이 감지되었다. 경보~삐삐삐.


아뿔싸!

그렇다. 친정엄마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가 아닌 저녁드라마의 단골메뉴인 주인공을 괴롭히고 온갖 못된 일을 꾸미는 드라마 속 사람을 입으로 눈으로 욕하고 계셨던 거였다. 내 쥐구멍 어디 있니? 옹졸한 마음을 들킬세라 애써 웃음 지으며 “엄마 오늘 별일 없었어?” 하고 말해본다. (깡통로봇보다 더 어색했던 건 안 비밀이다.)

내 속이 이렇게 밴댕이 보다 작았단 말인가. 믿고 맡긴다는 다짐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가. 아이고~어머니. 어머니를 잠시나마 욕했던 철부지 막내딸을 용서하시옵소서.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 내 자식이 잘 되라는 바람은 현재 내리사랑 손녀에게로 갔고 친정엄마의 황혼육아는 휴식기를 반복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철부지 워킹맘은 친정엄마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을 조마조마 맘 졸인다. 친정엄마의 화를 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엄마가 되는 건 중병을 앓는 것과 같아. 모든 사람이      다 그 병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
  아주 아주  힘든 일이야.”     드라마 마더 중에서

 어머니, 아니 엄마.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라는 자리가 이렇게 힘들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 힘든 자리를 평생 이어 오신 어머니.

어머니의 희생으로 철부지 막내딸은 육아의 짐을 잠시 덜어놓고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어요.

돌아보니 어머니의 화는 내 자식을 향한 사랑인 것을 늦게나마 깨닫습니다. 표현방식이 어찌되었 건 그건 확실합니다.

 이젠 어머니의 화를 안고 해님 같은 미소로 답해드릴게요.

그러니 남은 인생 해님처럼 함께 살아가요. 그리고 다음 생애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줘요. 항상 웃는 일이 넘쳐나는 행복한 딸로 키워줄게요.

저 때만 해도 행복한 웃음만이 있었는데~

 “너거 엄마는 와 이렇노! 이것도 안 해놓고 또 어디 갔노!

  으이구~속 터져!"

 친정엄마의 화는 오늘도 계속되지만 왠지 정겹다.  

 엄마~ 하늘 땅만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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