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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Dec 19. 2024

삼총사는 안 되나요?

워킹맘이 바라보는 아이 친구관계.

숫자 3.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우리 주변에서 숫자 3은 많이 사용된다. 3년 고개, 삼재, 삼신할머니, 삼 형제,  삼족오가 나오는 옛이야기부터 ‘귀머거리 삼 년이 요 벙어리 삼 년이다’, ‘내 코가 석자, 참을 인이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 '라는 속담도 익숙하다. 하물며 만세를 할 때는 만세 삼창, 게임을 할 때도 삼세판이 기본 국률 아닌가. 이쯤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3이란 숫자의 열성팬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 그건 친구관계다.


아이의 유치원 시절, 아파트 안에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원아는 딸아이를 포함하여 3명, 같은 연령의 여자아이 3명이 끝이다. 유치원은 보통 두 반 이상 있으므로 같은 반이 될 확률도, 아닌 확률도 50대 50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상반적이지만 이왕이면 혼자가 아닌 둘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이다. 워킹맘은 나 밖에 없었음에 더욱 간절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묻는다.

“엄마 우리 집에 마이쭈 있어?"

“왜?”

“내일 혜민이가 마이쭈 들고 오래”

“혜민이만 준다고? 들고 갈려면 친구들 거 다 들고 가야지, 한 두 개만 들고 갈 순 없어”

“응, 알았어”

“근데 왜 들고 오래?”

“먹고 싶다고 들고 오래. 아~ 몰라”

친구가 먹고 싶다고 챙겨주는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왠지 엄마의 촉이 발동했다.

" 지율이는 유치원 친구 중에 누가 제일 좋아? “

“ 음~나는 혜민이랑 지우가 좋은데 맨날 자기들끼리만 놀아. 지우는 우리 반이면서 놀이터에 가면 혜민이랑 놀고,  혜민이는 나랑 어린이집도 같이 다녔는데 맨날 안 된다고 하고. 흥! “

아이의 입이 피노키오의 코처럼 길어졌다.  

3명의 친구관계. 3명 모두 함께 놀이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지만 때론 a와 b, b와 c, a와 c 이렇게 나눠지는 게 사실이다. 무리를 이끌려는 아이가 두 명이 되면 서로 다투는 일이 잦게 되고 나머지 한 명의 아이는 소외감이 들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단짝친구는 바라지도 않지만 두루두루 잘 지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다.

 “ 지율이가 그 친구들 많이 좋아하는구나. 같이 놀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해서 속상했겠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툭 건들자 이내 아이의 눈물 풍선이 톡 터졌다.

 ‘어이구 내 새끼~친구관계는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토닥토닥.




아이를 기관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엄마들의 걱정 1순위는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1순위가 해결되고 나면 2순위로 아이가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친구를 때리진 않는지, 괴롭히거나 심한 장난을 치지 않는지, 아이들의 작은 사회 속에서 잘 어울리고 적응하기를 바란다. 아이의 사회관계는 엄마가 참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엄마의 어떤 고급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못 어울린다고 생각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일하는 엄마라는 꼬리표가 아이에게도 달린 것 같아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이에게 일어난 여러 갈등상황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아이 스스로 감내하고 이런저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이렇게 하면 친구가 싫어하는구나’,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판단하고 관계를 맺어나간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별다른 상황을 전해 듣지 못했기에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다투면서 친구가 되는 거지, 곧 지나갈 일이야’ 하고 애써 넘겼다. 무슨 일만 생기면 바리바리 전화하는 극성엄마는 더더욱 되기 싫었기에 아이 또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음을 믿었다.

그 믿음은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산산조각 났지만.


담임 선생님과 면담은 선생님이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왠지 떨린다. 두근거리는 심박수를 진정하려 애꿎은 핸드폰만 주머니에 넣었다 켰다를 반복한다. 이러고 있음 안되지.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뭘 물어볼지 머릿속 노트북을 재빨리 켜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뭘 물어보지? 한글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해요? 점심은 잘 먹나요? 이런 시시콜콜한 질문보다 친구와의 관계가 늘 궁금했다.

때마침 “지율이 어머니 들어오세요”하고 선생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열린다.


“어머니, 7세가 되면 아이들이 자기주장도 점점 강해져서 좋다, 아니 다를 확실하게 표현하거든요. 지율이가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긴 하는데 유독 혜민이, 지우와의 관계에서는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EBS 프로그램에서도 봤는데 친구가 세명일 때는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7세가 되면 지율이를 위해서도 서로 떨어지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  


똑, 똑, 또르르륵.

순간, 짭짤한 맛이 났다. 어디서 흐르는지도 모른 채 속상함이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였던가?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은 죄책감 반, 아이에게 피해를 준 것 같은 속상함 반. 둘은 꽈배기처럼 돌돌 꼬아 내 속을 꼬았다. 도망칠 수 없게.

진정 삼총사는 이루어질 순 없나요?  달타냥~~ 도와주세요. 삼총사는 진정 어려운 것인가요? 홀수가 문제인가? 날아라 독수리 오 형제는 그리 사이가 좋더니만 이에 해당 안 되니 패스.


그래, 힘들어하느니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니야, 혼자 다른 반이 되면 아이가 더욱 상처받지 않을까?

양가적인 감정이 휘몰아친다. 쓰다가 달았다가 흐렸다가 맑았다가 추웠다 따뜻했다.

맑은 먹구름이 되어 대답했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아이는 홀로 다른 반이 되어 7살을 맞이했다.

아이의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과 걱정들로 가득 찬 풍선이 떠오르지 못했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 내심 친구 문제가 아니길 바라면서.)


“지율이 어머니, 오늘 놀이터에서 지율이가 속상한 일이 있었어요. 지율이가 울고 있길래 가만히 들어보니 혜민이, 지우가 ‘너는 왜 우리 안 챙겨주냐’며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7살이면 스스로 할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서로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율이한테도 따로 불러 이야기 나눴어요. 평소 놀이터에서 관찰해 보면 놀면서도 혜민이, 지우한테 시선이 자꾸 갈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너를 힘들게 하는 친구는 굳이 같이 안 놀아도 된다고 그건 지율이한테도 좋지 않다고 말해두었어요. 그 친구들 말고도 하늘반에는 지율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요. 집에 가면 지율이 마음 많이 안아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세요.”

옳다구나! 이렇게 명쾌한 해설이 있나.

아이가 친구관계의 어려움을 말할 때  ‘그 친구와 놀지 마!’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 도덕 선생님처럼 안 된다고 하면 이기적인 아이가 될까 봐 주변에 친구가 없을까 봐 두려웠다.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하는 것이 정답처럼, 그게 사회생활의 기술처럼 알려주었다. 엄마의 불안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은 아이로 하여금 친구와의 관계 속에 방황하게 하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길도 모른 체.



3이란 숫자는 애초부터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가짐과 친구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가짐의 문제다. 관계 맺기에 따라 삼총사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고 부딪히고 구르며 친구관계 스킬이 레벨업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선미 교수가 말했던 영혼이 강한 아이가 되는 것, 즉 회복탄력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폭풍우에 쓰러진 나무가 더 깊이 뿌리를 내뻗듯 아이의 내면도 좀 더 단단하게 지탱하도록 돕는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일하는 엄마 때문에' 라는 죄책감으로 아이의 바람막이, 우산이 되어주려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되려 반성해 본다.  

그럼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바로 공감.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공감'은 상대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존중할 때 나오는 감정입니다. 의견이 서로 다를지라도 아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마음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김종원 '부모의 어휘력'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부모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 함께 감정을 존중해 주고 마음을 통하는 방법을 알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뜻한 공감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떤 관계에서든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다.



너와 나 사이는 비는 공간이 없는 공감으로 가득 차길 바라며

사랑하는 내 아이야.  관계의 너울 속에서 출렁이는 내 아이야.
모래에 파묻히지 않으려 애쓰며 엄마는 여기 모래 한가운데 서 있다.
너울이 높을 때나 거세게 몰아칠 때면 밀물이 되어
엄마의 따뜻한 품에 와 천천히 숨 쉬거라.
기꺼이 안전한 안식처가 되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엄마의 곁에서 사랑과 공감이라는 양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너는
파도가 아무리 심술궂게 너를 아프게 하여도
썰물처럼 밀려가 점점 앞으로 더 멀리 출렁이게 될 거야.
엄마는 언제나 모래 한가운데 서 있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너를 보며.
                                                                                                        -  달콤 말랑떡 엄마


오늘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였나요? 혹은 상처를 주는 말로 아프게 하진 않았나요?

동감이 아닌 공감을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 어렵지 않아요.

지금부터라도 해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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