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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뵤뵤리나 Nov 20. 2024

괸당이 뭔데예?

제주살이 경상도人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

 남편의 발령으로 제주 이주를 결정하고 난 뒤 주위의 우려가 많았다.

육지에서는 흔히들 텃세라고도 하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괸당 문화' 때문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지인들의 경험담이나 미디어에 비친 배타적인 섬 문화를 보고 연고 없이 내려간 우리가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 같다. 함께 근무했던 학원 원장님은 제주에서 몇 년 못 버티고 돌아온 친구의 사례를 들며, 차라리 직접 학원을 창업하는 게 좋을 거라는 친절한 조언을 남기셨다. (그럴 돈이 없어예) 원장이 되면 적어도 학원이 위치한 학군지 주변에서는 나도, 태어날 아이도, 나름의 입지를 다지고 텃세에서 자유로울 거라며. 급하게 떨어진 발령에 부랴부랴 이사 준비를 하는 와중에, 이처럼 적응 못하고 떠나온 케이스만 열거하며 다들 긴장감을 조성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덜컥 겁을 먹고 내려오게 됐다. (사실 겁은 나만 먹은 거 같기도.)


 사실 원장님 친구분이 이주하셨던 시절은 제주살이 붐이 일기 전이라 외지인들에 대한 대우가 척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달랐다. 이효리의 소길리 집(효리네 민박)과 지드래곤의 카페(몽상드애월) 대박으로 제주도 땅값이 들썩거렸다. 그와 더불어 공공기관 이전과 영어국제교육도시 조성으로 외지인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출산 후 친해진 조리원 동기들은 나 포함 1~2명을 제외하고는 제주에 뿌리를 둔 토박이들이었다. 출생지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의 전우애가 가장 각별한 시기였으므로,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친정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산후 조리하는 나를 더 안쓰러워하고 살갑게 챙겨줬었다. 다만 정말 세상 좁다고 느꼈던 건, 조리원 식당에서 국과 반찬 메뉴에 대한 품평이 한창일 때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가장 어린 막내가 알고 보니 조리원 원장님의 늦둥이 동생이었다 정도? (정말 좁다.) 이때까지만 해도 괸당이라는 말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본 적도, 그 의미도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괸당
: 어원은 동사 ‘괴다(밑을 받치다: Support)’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인 혈족, 친족이란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에서의 괸당은 혈연관계를 넘어서 지연, 학연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외지인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역사적 사건들(삼별초 항쟁, 제주 4.3 사건 등)을 겪으며 척박한 제주도에서 괸당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출처-
제주 밭담과 괸담, 그리고 괸당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3284)       
(기자수첩) 제주도의 생활문화 ‘괸당’ - 제주환경일보    



 따지고 보면 괸당은 제주에만 있는 문화는 아니다. '마, 우리가 남이가', '어데 최씹니꺼?',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같은 영화 속 명대사에서도 부산의 괸당을 엿볼 수 있다.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에서도 엄연히 지연, 학연, 파벌이 존재해 왔다. 다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아시아권 국가의 인류 보편적인 정서라고 여겼지, 유별난 지역 문화라고 의미 부여를 한 적은 없었다.


실례지만, 어데 최씹니꺼?


 그럼에도 제주의 괸당문화가 유독 강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섬이라는 다소 폐쇄적인 테두리 안에 혈족, 친족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외부 침략 세력에 의해 고초를 파다하게 겪었던 제주인들의 고단한 역사를 책을 통해 접하다 보면,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 모드가 대를 이어온 생존 본능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유구한 제주의 역사를 이해하고 나면 괸당의 필연적 탄생 배경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고 불합리하게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페널티를 주는 행태가 정당화된다는 건 아니다.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 입사 초기 텃세로 한창 스트레스 받을 때 "내가 외지인이라서 더 박하게 구는 건가 싶어."라며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 있었다. 대문자 T 다운 남편은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다고. 육지에서도 혈연, 학연, 지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거 아니냐고 한다. (이걸 위로라고 합니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외지인이라서 색안경을 끼고 본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비롯된 경계심과 방어본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도내 많은 회사와 농장에서 외지인과 외국인 직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국경의 문화적 윤곽이 희미해진다는 핵개인의 시대에, 토박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출신 지역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는 일은 점차 무색해지고 있다.


직장에서 경험한 제주 괸당 문화





 결론적으로 모두의 우려와 달리 우리는 제주에서 타고난 괸당은 없지만, 인정()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육지에서 온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새댁에게 친정이 곁에 없어서 힘들겠다며 갓 담근 유채나물 김치와 겨울에는 언제 다 먹나 싶을 정도의 많은 귤을 한 아름 챙겨주신 분들이 계셨다. 젊은 신랑이 제주를 새로운 보금자리 삼아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역 배드민턴 클럽에 데리고 가서 동네 형, 동생들을 소개해준 분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맘카페가 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맘카페에 정회원으로 등업된 자격이라면, 그 지역 핫한 소식에 소외됨 없이 어느 정도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IT강국 대한민국 만세.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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