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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뵤뵤리나 Nov 08. 2024

호텔리어 아니고 호텔출근러

미생 직장인의 삶으로 컴백




 립스틱 곱게 바른 입술이 쉽사리 떨어지질 못하고 옴짝 달짝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 무엇일지는 “저기요?”라는 물음이 담겨 있는 듯한 노크 소리에서부터 직감했다. 유니폼 셔츠 가슴팍에 비뚤게 달린 명찰을 바로 고쳐 잡으며 믹스커피 한 잔 홀짝 넘기고 넌지시 말을 꺼내는 룸메이드 여사님.      


 “OO총무님, 본사에서 박@@ 인스펙터(Inspector: 호텔 객실의 정비 상태를 최종 점검하는 책임 관리자)

급여 올려주라고 했다던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또 시작이다. 그놈의 ‘~라던데’, ‘~하던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확신 없는 어미와

미끼는 던졌고 네가 물 것이냐, 말 것이냐 고대하는 번득이는 눈빛. 입사 초창기에는 이들의 관계성을 모르니 슬쩍 떠보는 질문들에 넘어가곤 했고 들은 대로 얘기해 줬었다. 그 파장이 얼마나 속 시끄러운 결과를 가져올지 지겹도록 겪어버린 이제는 “모르는데요” 로 응수한다. 실망의 눈빛.

여사님, 어쩌겄소. 나 이제 절대 안 넘어가요.

예전의 그 순진무구했던 총무가 아니라니깐.


 “어유, 우리 총무님 본사에 일 잘한다고 소문났던데? 좋겠다. 흐호홍”


 멋쩍게 웃으시긴요. 칭찬해도 안 넘어가요.

귤을 콘테나 짝으로 줘도 안 넘어가요.

철벽을 치다 못해 철갑옷을 둘러야 했던 그 시절, 나를 지켜야 했기에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철칙을 지켜야 했기에, 때로는 차갑고 정 없이 굴었던 나. (혹자는 싹퉁머리 없다고 느꼈을지도) INFP의 감성적이고 여린 면모는 점심시간 호텔 근처 올레길 산책할 때만 꺼냈다가 사무실에 들어서면 다시 차가운 이 총무로 돌아가곤 했다.   



 총. 무. 전체의 사무를 취급하는 사람. 내가 호텔에서 일하지만 호텔리어는 아닌 이유.

동음의 다른 한자를 찾아봤더니 무덤 ‘총’(塚), 바쁘다 ‘총’(悤)도 있더라. ‘너무 바빠서 일 무덤에 파묻힌다’로 해석하며 자조하던 웃픈 시절.     


 워킹맘의 첫 발을 내디뎠던 직장은 ◇◇호텔에 관리 인력을 파견하는 용역회사였다. 본사는 당시 제주 도내 여러 호텔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그중 ◇◇호텔이 가장 많은 용역 계약 인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생겨난 지 갓 3년을 넘은 신생 호텔의 6개 관리부서 110여 명 계약직원을 통합 관리해야 하는 총무직은 사실상 기피 대상이었다. 저명한 호텔의 경력 있는 본사 소속 총무들에게 제안을 했지만, 의존할 체계나 네임밸류가 전무한 ◇◇호텔에 선뜻 지원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객사(이하 갑)인 호텔과의 계약 이행을 위해 총무직 1명은 필수이니, 본사 입장에서는 급한 대로 스포츠팀(수영장과 피트니스 GYM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수영장 안전요원을 하던 직원을 자리에 앉혔다고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출근해 보니 내 자리는 잠적해 버린 전임자와 본사의 분쟁으로 시끄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인수인계도 안 하고, 제대로 된 자료도 남겨두지 않은 무개념 직원에 화가 날 대로 난 본사는 하루빨리 후임자가 자리를 잡고 던져주는 일을 처리해 주길 바랐다.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나로서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실무에 적용하기 애매한 양식의 엑셀 파일 하나와 A4용지 1쪽짜리 업무 인계 보고서가 덩그러니 놓인 컴퓨터 바탕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참고할 자료는 고사하고 체계를 새로 만들어야 할 판이었으니까.      

 ‘그래, 사무직에 능숙하지 않았던 직원이었으니까 자료가 얼마 없겠지.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니까 괜찮아.’


 친정도 친구도 멀리 두고 제주에 온 나의 정체성은 “여보”이자 “꼬미 엄마”였다. 이름 석자는 고사하고, 성을 빼고 두 자도 불릴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내 본연의 이름을 잊고 4년을 살았다. OOO총무님, OO 씨로 불리는 일이 이리도 설레는 일이었나. 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난 그들에게 꽃이 아닌 열혈 신입사원이 되었다. 4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니 그만큼 간절했고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렬했다. 간절함은 곧 열정이 되어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했다. 말 그대로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사회초년생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본사에서 업무 인계를 도와준 사수에게 전해 듣자 하니 전임자는 현장 소장, 하우스키핑(Housekeeping: 호텔 객실 및 공용 공간의 청소와 정리,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객실 팀장과 상대를 바꿔가며 하루가 멀다 하게 싸웠단다.

 그녀가 싸움닭이 된 배경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일 배우기에 급급해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모두가 빌런으로 지목했던 전임자는 입사 초기엔 공공의 적인 줄로만 알았으나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달았다. 그 자리에 없으니 욕을 먹고, 책임 전가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감히 겪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던가. 내가 그녀의 입장이 되고 보니 만만치 않은 자리인게 분명했다.



 각종 서류 작성과 110여 명의 인사관리, 유니폼 재고 관리, 사무용 비품 관리 등을 차치하고, 애초에 채용공고에 명시되었던 업무 요건에는 정작 제일 중요하고도 어려운 역량 빠져 있었다. 바로 ‘소통’.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 밖에. 그곳의 총체적 난국은 다 소통에서 비롯되었다. (호텔)과 을(본사) 사이의 메신저 역할, 호텔 내 6개 관리부서(객실관리/미화/스튜어드/스포츠/직원식당/시설)팀장들과 현장 소장과의 입장 조율, 그 와중에 사고만 터지면 책임론으로 교체되던 현장 소장들, 각자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 본사와 갑사 사이에서 횡행하던 직원들의 이간질, 사내 정치, 매번 직접 눈으로 감독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호텔 현장에 대한 본사의 몰이해와 불신. 하나하나 열거하자니 입이 아프다.  

     

 제주에서 내 커리어의 출발점이었던 ◇◇호텔. 사회적 인정 욕구를 채워주었지만, 동시에 얇은 와인잔처럼 유약한 멘탈을 강화유리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준 곳. 아이 엄마로서 마주한 제주와 직장에서 직면한 제주는 사뭇 달랐다. 지역 정서도, 호텔이라는 새로운 업종도, 모두가 낯설고 새로운 이곳에서 나는 마치 미생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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