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말에 집을 비운다면 사춘기 자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시험을 코앞에 둔 때라면.
나에게는 몇 안 되는 육아 철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 시험기간에는 나만 놀지 않는다.’이다. 시험기간이라고 해봐야 대충 퉁쳐서 일주일 정도로, 녀석이 그나마 공부란 놈을 진지하게 대적하는 찰나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일주일이건 이 주일이건 간에 한국인 정서상 한(恨)이 생기면 구천을 떠돌게 되는 법.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 시간은 나에게 금욕의 주간으로 사적인 약속은 저쪽으로 밀치고, 엄마표 집 밥 찰지게 해다 바치며 고 놈 입에서 군소리가 쏙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금욕주간 중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겨 주말 동안 집을 떠나게 되었다. 당장 월요일부터 시험인 아이를 두고 주말에 집을 비운다는 것이 마뜩잖다. CCTV 켜둔 감시자는 아니어도 미지근한 관찰자라도 되어 따스운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엄마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몇 끼 안 먹는다고 뭔 일 생기지 않을 뿐더러 편의점이 지천인 세상에 도대체 뭔 걱정이람.
“ 토요일에는 알아서 밥 먹어. 그날 엄마 집에 없어.”
“ 왜~~~~에? 진~~~~ 짜?”
길게 늘어지는 말투에 반짝거림이 묻어난다. 안 봐도 비디오다. 아니, 안 봐도 쇼츠다.
그러나 쇼츠 본들 또 어떠하며 릴스 본들 또 어떠하리. 믿는 만큼 아이는 자란다고 하니 네 녀석 더 자라는 순간이 되겠지. 너의 자기 주도성 끌어올릴 기회라고 여기자.
배실배실 웃으며 부탁이 있다 한다. 육전을 만들어 놓고 가란다.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로. 한우면 더욱 좋겠다는 붙임 말. 자기 주도성은 식사 메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분부 받잡겠나이다.
준비물 : 소고기(홍두깨살), 찹쌀가루, 계란, 진간장, 설탕, 참기름
얇게 썬 홍두깨살로 준비한다. 두께 생각할 필요 없이 육전용이라 딱 적힌 것으로 집어온다. 키친타월 톡톡 두드려 핏물 제거한 고기에 밑간 해주고 찹쌀가루 곱게 분칠 하여 계란물 입혀 준다. 기름 넉넉히 두른 팬에 구워 주면 끝. 냄새조차 고소한 육전 완성이다. 반찬용기에 차곡차곡 포개서 냉장고에 넣어둔 뒤 이제 엄마는 나의 세상으로 퇴장하련다. 아쉬움이라고는 1도 없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주말을 보내고 만나도록 하자.
“ 까똑~” 점심시간 아들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으잉? 위와 아래가 바뀌었나? 육전이 아래에 있고 면이 위에 있다.
육전을 즐김에 있어 면은 단지 거들뿐. 본인의 취향 것 야무지게 차려 먹었구나. 그런데 그 음식의 자태가 사뭇 사치스럽다.
이 놈아, 엄마가 너만 할 적엔 비빔면에 삶은 계란 하나면 충분했단다. 삶은 계란 하나도 반으로 나눠 먹을 때가 있었고 오이가 듬뿍 들어가 있는 나의 엄마 그릇엔 그 계란 하나도 없었던 적도 있었다. 지독하게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재물이 넘쳐나지도 않던 시절이었는데 엄마의 그릇엔 고기나 계란 보다 김치나 채소가 더 많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가 되어 그냥 엄마처럼 먹고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먹을 것이 흘러넘치는 세상에 사는 내 그릇의 고기조각 보다 아이 그릇의 고깃덩이가 더 큰 것과 같은 이유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자리에 스며들어 있음도. 갑자기 떠오른 엄마 생각으로 늦어진 답장을 녀석에게 보낸다.
육전에 비빔면 잘 말아먹은 아들아, 설거지해두는 거 잊지 말자. 그래야 엄마가 자주 외출하고 싶어 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