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김에 승무원
“ Helen, What do you want to be?”
“ I.. hmm...”
저 질문은 마치
“How are you?”에 대한
“ I am fine thank you, and you? ” 와 같은
콕 찌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의 질문인 것이지.
대한민국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인. 저런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아 왔었다. 고로 질문에 대한 답은
식은 죽 먹기라는 말씀~
하지만 고려해야 될 사항이
나의 대답에 대한 2차 질문이 추가적으로 나오지 않게 '질문 금지' 대답을 만들어야 한다.
난 생각한다. 그때 내 안의 또 다른 Helen이 대답한다.
나의 직업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승무원이요~
왜냐하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 다닐 수도 있고, 여러 나라 사람들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여행 다니고 싶어서 승무원이요~
쉬운 단어 그리고 간단한 문장으로 내 나름 완벽하게
내 안의 또 다른 Helen은 짧은 문장으로 후다닥 얘기했다.
오홋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 반응도 좋다. 나름 한국의 항공사를 알리게 된 계기도 되었다.
그렇다. 난 21살 아닌가? 여행도, 영어도 좋아했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호기심도 많았으며
그때 그 당시에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었다.
이 임기응변 같은 대답으로 나의 직업을 결정하게 될 줄은 그땐 몰랐었지.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열화 같은 호응으로 몇 년 뒤
비행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자는 야무진 약속까지 했었더랬지.
그 후 난 많은 추억을 남기고 귀국하였다. 이 추억들도 곧 소환해 봐야 되겠다.
그리고 난 환승하는 귀국 항공편을 타면서 공항이며 항공기에서 승무원들의 비행 모습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으며 직업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어? 할만하겠는데?’
복학을 하고 나는 같은 과친구들과 다르게 진로를 승무원으로 바꾸게 되었으며
영어를 놓지 말아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타과의 복수 전공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이어갔다.
물론 이것저것 경험도 채워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카페 아르바이트, 설문조사로 전 연령의 사람들을 만나
얘기도 해보았고 마지막으로는 어학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서 학생들 영어 회화 수업을 이어 나갔다.
근데 알고 보니 같은 학원 선생님이 또 나와 같은 승무원 지망생이라서
가끔 귀동냥으로나마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당시에도 승무원 대비 학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찌 되었던 간절함이 부족하였는지 쉽게 생각하였었는지
그냥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무슨 자신감이 그리도 있었는지
인터넷으로 면접 방법에 대해 검색하며 나름 공부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 프로필 사진.
실물은 상관없다. 그 누구의 눈에도 면접 쯤은
진즉에 가볍게 통과한 어느 항공사의 직원처럼 보이기에 충분한 포샵을 해주는
스튜디오도 찾아냈다.
얼마나 승무원 같은지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승무원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인상인지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이라 믿었던 시절. 수십 개의 스튜디오를 뒤져 고르고 고른 끝에 결정했고,
그런 노력 끝에 손에 쥔 사진만으로도 이미 합격한 기분에 들떴다.
드디어 공채 공고가 떴다. 그간 공들여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동원해 지원했고, 기다림의 시간. 하나둘,
합격자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그때의 지루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근두근
그렇지! 1차는 합격해야지~
오~근데 2차도 합격,
설마 했던 3차 면접이 합격되자 이제는 간절해지지
그리고 마지막 신체검사까지 통과~~~!!!
생각지도 않게 쉽게 쉽게 잘 풀려 나갔다.
합격 후 바로 합숙 훈련에 들어가고 그 후 본격적으로 신입 교육이 있었다.
1학년 입학생처럼 우리는 훈련생 제일 귀염둥이가 되어 서서히 서비스라는 옷을 입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잊혀 가는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 기억나는 기내 방송,
아직까지 뇌리에 남는 찹쌀떡 마냥 입에 쫙쫙 붙었던 그 단어
‘비상 탈출’ 훈련과 기내 서비스 교육들,
기가 막히게도 안 외워지던 각종 와인들에 대한 공부,
직접 만들면서 했으면 더 좋았을 법한 칵테일 만드는 법,
비행 노선에 따라 그리고 클래스에 따라 달라지는 서비스 방법 등등 교육을 받았다.
물론 제일 재미있었던 수업은
호박에 줄 그어 최대한 수박에 가깝게 만드는 내 얼굴에 맞는 승무원 메이컵 수업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재미있는 알찬 수업들을 돈을 받고 배웠다.
3개월간의 동기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들로 교육을 수료하고
덜덜 떨면서 서비스한 첫 비행은 아련한 저편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입이 찢어져라 웃느냐 눈이 초승달이 되고 손님들 짐은 번쩍번쩍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면서 뽀빠이가 되어서 들어 짐칸에 넣어 드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비행기 냄새가 그립다.
긴 장거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