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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와디캅! 이거 주세요

맛 좀 봅시다.

by 비읍비읍

수영장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제 겨우 5시가 되었는데, 아내의 말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야시장이 5시 반부터 열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으로 볼트(bolt)를 이용했다. 애석하게도 트레블 월렛 카드와 연동은 자꾸 실패해서 cash로 결제하는 걸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빨간색 도요타를 타고 나타난 드라이버는 지금 시간에 택시 타는 거 실화냐고 물었다. 4시 반부터 학교들이 하교시간이기도 하고 직장인들 퇴근시간이 5시부터라서 올드 타운 안에는 완전 꽉 막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목적지 길 건너에 세워줘도 되냐는 둥 대화를 이어갔다.


이 모든 대화는 파파고와 함께 했다. 나는 파파고를 통해 '한국어 -> 태국어'로 번역하여 들려주었고, 그는 구글 어플을 통해서 '태국어 -> 한국어'로 번역하여 문자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서로 소통하는 모습이 웃겼는지 옆에서 아내는 동영상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간대에 택시를 타는 게 좋은지부터, 추천하는 음식이 있냐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 서로 대화가 좀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개인택시처럼 본인을 고용할 생각은 없냐고 했다. 나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우린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일 중에 우리의 계획이 결정되면 그때 연락해도 되냐'는 여지를 남겨두며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KakaoTalk_20250303_152435606_06.jpg 극심한 교통체증의 치앙마이 퇴근시간.


우리의 목적지는 '창 푸억 게이트 나이트 마켓'이다.

볼트 기사 말마따라 도로에는 차가 가득했다. 차만 가득한 게 아니라 오토바이들도 틈새에 가득하였는데 이곳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매연으로 목이 콱 잠기는 도시인 것만 같다. 무단횡단과 눈치껏 길 길 건너기를 두 차례하고 나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내는 호기롭게도 나이트 마켓에서 메뉴 3~4개는 거뜬히 먹어보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아직 배가 좀 불러있는 상황인데 아내는 벌써 소화가 다 된 것일까? 가장 먼저 우리는 '수끼'라는 메뉴를 먹으러 갔다.


구글 지도에 나온 리뷰 사진들을 고려할 때 아마 저-기에 이미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인가 보다 하며 걸어갔다. 5시 45분 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자리는 만석이었고, 대기번호를 받아야 했다. 대기번호 2번으로 조금만 기다리다가 입장했는데 대학교 축제 때 주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점심에는 옆 벽면이 없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천장까지 없다. 그냥 테이블 깔고 의자에 앉아 있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볶음과 탕을 한 개씩 시켜서 자리에 앉았는데, 난 여전히 배가 살짝 불러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맛있는걸 눈앞에 두고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볶음이 기가막혓는데 팟타이-스러운 재료들로 살짝 기름에 볶은 요리였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아내와 뭐가 제일 맛있었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수끼 볶음이 top 5 안에 드는 메뉴라고 답했다.


수끼를 클리어(?)하고 나서 2차로 족발 덮밥을 먹으러 갔다. 2개 천막 정도 옆에 있는 가게에서 먹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쌀밥을 전혀 먹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밥이 불필요했던 것이지만 막상 쌀밥을 먹으니 한국인의 진한 감수성이 샘솟았다. 족발은 너-무 많이 익어서 흐물흐물해진 상태라 한국의 그것과 1:1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꽤나 감성적인 맛이었다. 부른 배를 쥐여 잡고 끝까지 밀어 넣는 우리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경외심이 들었다.


족발 덮밥 이후에 망고 스티키 라이스(Mango sticky rice)를 파는 곳 근처를 서성였다. 다음날 쿠킹 클래스때 먹을 수 있는데 굳이 지금 먹어야하나- 싶긴한데, 지금 먹어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여러 고민 끝에 로띠-를 선택했다. 나는 처음 들어본 디저트인데 발효된 반죽을 넓게 펴서 호떡처럼 굽는다. 반죽 안에 바나나를 슬라이스로 잘라서 넣고 연유와 누뗄라를 뿌린다. 요리조리 잘 덮어서는 양면을 바싹 구워 8등분으로 잘라준다.

'아 배불러!' 라고 한껏 예민하게 있던 내가 오히려 다 집어먹고 하나 더 사 먹자고 할 지경이었다. 돌이켜보니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였는데, 이 날 이후로는 더 이상 먹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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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푸억 나이트마트 3대장


식사를 다했는데도 아직 길거리에는 차량 정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간이 벌써 7시가 넘어가는데도 정체가 유지된다니... 다음번에 택시를 탈 때는 꼭 시간 피해서 타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의 교통체증이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가기 전에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문을 닫기 직전의 사원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고양이 3마리가 보였다. 아내는 치앙마이가 고양이가 많기로 유명한 걸 알고 있었다며 반색했다. 카메라에 사람에게 친숙한 고양이들을 담고 있는 아내 주변으로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총 10마리가 와글와글 모여들었다. 아내는 그냥 카메라만 가지고 있었는데도 이 정도인데, 츄르를 가지고 있었다면 30마리는 모였겠다 싶었다. 어딘지 한국의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부어있지도 않고, 심지어 삐쩍 말라있던 것 같다.


아내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jazz bar-라고 소개하며 길을 안내했다. 치앙마이 안에 올드타운은 정사각형의 방벽과 수로로 구분되어 있다. 우린 이 중 north gate에 해당하는 지역을 관광하고 있다 보니, 재즈바 이름도 north gate jazz bar- 였다. 7시 반부터는 4층에서 공연을 시작하고, 8시 반에는 1층에서 공연을 시작한다고 하여 4층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갔다. 나와 아내가 제일 마지막 참석가능 인원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재즈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바 테이블에서는 각 국에서 모인 솔로(?) 남녀들이 자신들을 소개하며 '잇츠 크레이지...'를 연신 외치며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추정컨대 이렇게 서로 만나게 된 건 말도 안 되는 우연이다- 라며 플러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왜인지 남자들은 온통 여미새에, 여자들은 남미새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재즈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공연자와 정말 가까이에 있었다. 대학로 연극공연에서 맨 앞자리 수준이 아니라 공연자가 발로 박자를 맞추는 그 진동마저 내 신발에 느껴졌다. 굳이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1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그리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하지 않으면 해외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 도중에 다양한 썰을 풀기도 했는데, 영어를 하지 못한다면 모든 게 소음으로만 들렸을 것이다.

KakaoTalk_20250303_152713129_01.jpg boom... boomm...boommmm



8시 반에 재즈바를 나오는데 1,2층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렇다. 본 공연은 8시 반부터 1,2층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4층에서는 기타와 색소폰 연주자만 있었지만, 1층에는 색소폰 / 첼로 / 드럼 / 기타 연주자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욱 본격적인 공연처럼 보이는 8시 반 것을 보고 갈까 싶었지만, 이미 충분히 재즈-소울이 몸에 가득 차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거나 더 긴 시간 동안 혼자 여행을 왔더라면, 지금부터 이 공간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게 '적절'할 만큼 다양한 사교의 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재즈바가 곳곳에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곳만큼 엣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날에는 이 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술 한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꽤나 인상 깊었던 꼬치집에 들렀다. 이번에도 소고기 2개, 돼지고기 2개를 시켜서는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익숙해진 사람처럼 장사하시는 분과 인사를 나눴고, 더 명당인 자리에 앉아 건너편 술집에서 남녀가 열심히 모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내와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태국 음식 메뉴를 클리어해야 하는지 말했다. 지금 조금이라도 배가 남아있으면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KakaoTalk_20250303_152435606_04.jpg 부른 배에 똠양꿍 한 스푼 추가요

근처에 있는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 똠양꿍 스프와 쏨땀을 주문했다. 똠양꿍은, 태국에 왔는데 아직도 못 먹어봤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쏨땀은, 어제 먹은 게 맛있는 편인가- 궁금해서 다시 시켜봤다. 똠양꿍은 꽤나 맛있었고 여행 중에 여러 번 더 먹고 싶어지는 메뉴였다. 다행히도 나와 아내가 둘 다 똠양꿍을 먹는 사람이니 태국 음식 중에는 가릴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쿠킹 클래스에서 똠양꿍을 만들게 되면 오늘의 메뉴와 맛을 서로 비교해 봐야겠다며 아내와 계획을 세웠다.


터질 것 같은 배는 샤워로 씻어내려 놓고, 잠자기 직전에 테라스에 맥주 한 캔씩 들고 모였다.

오늘 하루 참 많은 걸 했다고 서로 자평했다. 있었던 일과 먹었던 것들을 나열하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5일을 여행하는데 4일을 오늘처럼 보내게 될 테니, 나머지 3일도 즐거운 추억들로 가득 채워지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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