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에 영화 '하얼빈'이 개봉합니다. 현빈 배우가 안중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다양한 배우들이 20세기 초반의 암울했던 대한제국 시기를 재현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필자의 『편견의 역사』에서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라는 제목으로 역사의 상대성과 편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글은 완성했지만, 연재 순서상 아직 몇 주나 뒤에 게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봉전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 '하얼빈'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는 둘째치고서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극히 우리의 입장에서만 영화가 다루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 중 한명인 이토 히로부미가 지극히 평면적인 악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것이니 분명히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영화 제작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들어 평면적이고 흔해빠진 전형적 악인의 빌런, 절대적 선과 정의를 부르짖는 전형적 주인공과 같은 평면적인 인물들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마블시네마틱의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의 타노스와 엔드게임에서의 타노스가 각각 다른 평가를 받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피니티 워에서의 타노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수양딸 가모라의 목숨마저도 버릴 정도의 확고한 신념을 가졌으며, 스스로 사랑하는 비전의 목숨을 끊은 완다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과업을 완수한 이후에도 환호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작은 농장으로 돌아가 스톤을 분해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전 우주의 절반을 없애고자 하는 빌런이었지만, 그의 행동에 당위성이 설명되고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것이죠.
그와는 반대로 엔드게임에서의 타노스는 인피니티 워에서의 타노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래에서 시간여행으로 넘어온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 타노스는 우주의 모든 것을 없애면서도 웃을 수 있을 것이라 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포격을 명하는 등의 전형적인 악인의 빌런으로 돌아가버리죠.
따라서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전형적 선인 안중근과 전형적 악인 이토 히로부미일 수 밖에 없는 관점에서 영화 '하얼빈'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연재하는 『편견의 역사』에서 다루겠지만,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매우 복합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라는 구도로 바라본다면, 아주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영화 '하얼빈'에 대해서는 이후 영화를 직접 본 이후에 다시 리뷰를 남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본 조선의 정복과 그의 행동에 대한 멋드러진 영화적 해석이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