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Shannon의 "A Bad Case of Stripes"
이유 없이 갑자기 온몸에 오한이 들면, 머릿속에선 몸속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경계경보가 마구 울리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 밤이 그랬지요. 밤새 덜덜 떨리던 오한과 고열 속에서 결국 올해 그렇게 유행이라던 독감을 피할 수 없었구나 싶던 자각.
수업이 무척 많이 잡혀 있는 겨울방학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 아이의 정시 원서 접수가 며칠 남지도 않은 이 시점에 독감은 당연히 불청객이었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있던 모든 일정을 미루고, 타미플루와 해열진통제를 벗 삼아 이불속에서 이 바이러스의 침범이 무난히 지나가 주기를 바라며 끙끙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지요. 우스개 소리로 "감기는 병원에 다녀오면 1주일이면 낫고, 안 다녀오면 7일 걸린다"라고 했던가요? 오늘로 6일 차, 다행히 몸은 정상 상태에 가까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림책 중에도 질병 특히 전염병을 다룬 책들이 제법 있습니다. 아직 면역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유치원, 학교 등 단체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각종 병원균은 결코 쉬운 상대일리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아주 특이한 병균에 감염된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 질병은 정말 이상하고도 놀라운 질병이지만, 그 주원인이 주변의 다른 이들로부터 왔다는 점에서는 일반 질병과 사실 다를 바가 없었지요.
새 학년 첫날을 맞은 소녀, Camilla Cream은 누구보다 새로 만날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열심입니다. 아침부터 42벌의 옷을 입어볼 정도로 열성적이지요. 친구들에게 이상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고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lima beans도 안 먹어요.(제정신이라면 누가 그런 콩 따위를 좋아하겠어요.)
All of her friends hated lima beans and she wanted to fit in.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리마콩을 싫어했고, 그녀는 잘 어울리고 싶었어요.
Camilla was always worried about what other people thought of her.
Camilla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했어요.
43번째로 막 빨간 드레스를 입어보려는데, 거울을 본 Camilla는 비명을 지릅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그녀의 어머니도 비명을 지릅니다. Camilla의 온몸이 알록달록 줄무늬로 덮여있는 게 아니겠어요?
당장 달려온 의사 선생님도 이 증상은 해결하지 못했고 Camilla는 다음 날 결국 그 상태로 학교에 가야 했어요. 아이들은 그녀를 미칠 듯이 놀려댔고, Camilla의 피부색은 아이들이 말하는 대로 자꾸만 바뀌어 갔어요. 성조기 무늬가 되었다가 보라색 물방울무늬 무늬로, 체크무늬로 TV 채널을 바꾸듯 자꾸만 변했죠.
급기야 이 희한한 증상의 전염 가능성에 대한 학부모들의 문의에 지친 교장선생님은 Camilla의 부모님께 그녀가 집에 머무는 게 낫겠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Camilla의 하루하루는 지옥 같았어요. 온갖 종류의 전문가들이 몰려와서 나름의 진단을 내리는 동안 Camilla는 점점 본모습을 잃고, 온갖 색깔과 문양, 다양한 형태로 변해 갔어요. 몰려온 방송국 기자들은 그녀를 "Incredible Changing Girl(믿기 어려운 변화하는 소녀)"이라고 불렀고, 한 환경치료사가 "~become one with your room.(너의 방과 하나가 되어 봐.)"라는 말을 한 후에는 Camilla는 급기야 사람의 형태를 거의 잃고 방과 일체화가 되었죠.
바로 그 순간, 한 다정해 보이는 노부인이 찾아왔어요. Camilla의 증상을 익히 아는 것 같았던 이 노부인은 가방에서 lima bean을 꺼내어 Camilla에게 권했습니다. 아직도 예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Camilla는 첨에는 누가 그런 것을 먹겠냐고 거절했지요. 하지만....
Being laughed at for eating them was nothing compared to what she'd been going through.
리마콩을 먹는다고 놀림받는 것은 지금껏 그녀가 겪어온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The truth is... I really love lima beans."
"사실은... 전 진짜 리마콩을 좋아해요."
Camilla가 자신의 진짜 취향을 인정하고, 그 먹고 싶던 콩을 입에 넣은 순간, 모든 증상은 사라지고,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마법의 약을 먹은 것 같았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남의 시선을 무척 의식하면서 지내지요.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시선과 평가는 세상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사실 아이들만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예의와 사회규범이란 이름으로 그 사실을 포장하여 감출 수 있을 만큼 세련되어지지만, 여전히 남들의 시선에 비춰 내 모습을 읽어내곤 합니다. 사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되면서 얻은 수많은 장점들과 엄청난 효율에 비하면 그 이면의 약간의 문제점쯤은 참아 넘겨야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가끔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사회가 주는 압력에 굴복하고, "나"의 참모습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Camilla처럼요.
지나치게 사회성이 좋은 Camilla는 작가 David Shannon의 다른 주인공들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 유명한 "No! David"의 작가인 Mr. Shannon은 자유분방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또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많이 선보여 왔죠. 그런 점에서 다소 다른 방향성을 보이는 이 책은 그 화풍도 다른 책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선명하고 대담한 색감과 구도,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화풍을 써서 작가는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블랙코미디 같은 이 이야기에 적절한 리듬감을 주면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사실 그 초현실적 화풍 때문에 이 그림책을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점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할 때 조금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요.
또한, 이 책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투명하리만큼 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홈페이지에 보면, 이 책은 "~(Camilla's) strange journey as she learns the dangers of trying to be all things to all people, and the joy of just being herself.(Camilla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고자 하는 것의 위험성과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의 즐거움을 배우게 되는 이상한 여정)"에 관한 책이라고 적혀 있어요.
작가의 이런 메시지는 이 책이 거의 25년 전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요즘 우리의 문제를 정통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또래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의식하게 되는 타인의 시선과 취향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과 취향 따위 사회화가 내민 가면 속으로 쑤셔 넣어 감춰버리도록 할 만하지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다른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싶다면, 거의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어려움을 거치고 나서야 자신의 취향을 인정하게 된 Camilla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됩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 정도는 흔쾌히 인정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동조를 요구하는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는 그녀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작가 홈페이지 https://nodavidshannon.com/
원어민이 읽어주는 오디오 북 https://youtube.com/watch?v=1GiX9F_Fp6k&feature=shared
권장 연령 7~9세 / Lexile 지수 AD610L (Grade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