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 & Martial Law
서구 문명의 뿌리를 논할 때, 크게 이성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Hellenism)"과 신앙 중심의 "헤브라이즘(Hebraism)"으로 나누어 말하곤 합니다. Matthew Arnold의 저서인 "Culture and Anarchy"에서 비롯된 이 이론은 물론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인간 중심 주의와 신 중심주의가 서로 끊임없이 경계와 균형을 이루기를 반복해 온 서양 문화사의 한 측면을 잘 보여주지요.
이중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특히, 이들 문명의 근원이라고 할 만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의 음악, 미술, 문학 등 문화 전 분야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들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인에게 익숙한 신성한 이미지의 종교적 신과는 거리가 먼 이 초자연적 존재들은, 그 감정의 기복과 행동의 돌발성에서 어느 인간 못지않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다 싶은 대단한 막장드라마의 온상이자 다양한 인간적 갈등의 집합체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온갖 드라마를 끌고 다니는 고대의 아이돌 같은 신들 중 "전쟁의 신"이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사실 그리스와 로마 양쪽 문화에는 모두 전쟁의 신과 여신이 존재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Ares)"와 여신인 "아테네(Athena), " 그리고 로마 신화에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Mars)"와 여신인 "벨로나(Bellona)"가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보다 적극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던 로마 제국에게 있어서 전쟁은 삶의 중요한 일부나 마찬가지였지요.
전쟁의 여신 "벨로나(Bellona)"가 전쟁의 호전성, 잔인성을 상징했다면, 전쟁의 신이면서 동시에 농업의 신이기도 했던 "마르스(Mars)"는 전략적 전쟁, 로마의 영광과 관련된 상징성을 가지며, 로마제국의 뿌리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로도 묘사됩니다. 이 두 신의 이름은 현대 영어에서도 다양한 단어에서 그 영향을 보여주고 있지요.
전쟁의 여신 "Bellona"의 이름은 라틴어로 "전쟁"을 뜻하는 "bellum"이라는 단어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 단어는 현대 영어에서는 "호전적인"을 뜻하는 "belligerent" "bellicose" 같은 단어의 뿌리가 됩니다. 또한 "반란, 폭동"을 뜻하는 "rebellion"도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지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은 우리가 보다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태양계의 행성인 "화성(Mars)"의 이름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빨갛게 타오르는 외양이 피 흘리는 전쟁을 상징하는 로마 신의 모습을 연상시킨 것일까요? 하지만, 농업의 신이기도 했던 그의 이름은 농사의 시작을 뜻하는 3월의 이름 "March"에도 그 흔적을 남깁니다. 물론 "전쟁의"라는 뜻을 가지는 형용사 "martial"도 그의 이름에 뿌리를 두고 있고요.
"martial"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쓰이는 표현으로 최근(정확히는 12월 3일 이후) 우리에게 갑자기 알려지게 된 말로는 "Martial Law(계엄령)"가 있습니다. "Martial Law"는 특정 지역에서 민간 법률(civil law)이 중단되고 군대가 질서를 유지하거나 통치하는 법적 체계를 지칭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전쟁 기간 동안 민간 법률이 종종 무시되거나, 전쟁 중 최고 권위를 부여받은 군사 지도자가 모든 법적 권한을 행사했던 관습이 그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Martial Law"라는 용어 자체는 16세기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리 8세가 반란이 발생했을 때, 군사적 권위를 발휘하여 민간 법률을 무시하고 군사법을 시행했을 때였지요. 1628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에서는 의회가 국왕이 평시에 계엄령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용어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Martial Law"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최초의 경우가 그것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탐하는 많은 정치인들이 위기의 상황하에 절대 권력을 휘두르려는 시도를 해 왔습니다. 물론 그 위기가 국가적 존망의 위기였을 때도 있었지만, 국왕이나 권력자 개인의 위기인 경우도 포함되었지요. 후자와 같은 경우, 그를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 국민이 그 수단의 소중함을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전쟁의 신 "Mars"는 단순한 전쟁광이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참전여부를 윤리적 기준으로 결정하는 합리적 결정자이자,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질서와 규율을 상징했고, 평화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전쟁을 이야기하는 존재였지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잔인한 제도일 수 있는 "전쟁, " 전쟁은 평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고대 로마로부터의 전언은 21세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그 울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