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진 Dec 09. 2024

눈 내리는 숲 속의 우당탕탕 동거

Jan Brett의 그림책 "The Mitten"

 
눈처럼 하얀 벙어리장갑 한쪽이 숲 한가운데에 떨어집니다. 눈 속에 떨어진 하얀 장갑이 눈에 잘 뜨일 리 없건만, 숲 속의 동물들은 하나씩 둘씩 그 보송보송하고 폭신한 장갑의 매력에 빠져 버리죠.
 
사실 그 장갑의 주인은 Nikki라는 소년입니다. 그는 한사코 말리는 할머니께 꼭 눈처럼 하얀 벙어리장갑을 떠 달라고 졸라댔죠..



"If you drop one in the snow, " she warned, "you'll never find it."
"만약 네가 한 짝을 눈 속에 떨어뜨리면, " 할머니는 경고했어요. "넌 그것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소년은 할머니가 새로 떠 주신 장갑을 끼고 나가자마자, 한쪽을 눈에 떨어뜨리고 말아요. 그리고, 그 장갑 덕분에 숲에선 작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 많은 두더지가 그 속으로 쏙 들어갔을 뿐이죠. 하지만 그 후엔 하얀 토끼, 고슴도치, 부엉이, 오소리, 그리고 여우까지... 동물이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과연 더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싶지만, 누군가의 튼튼한 발, 누군가의 뾰족한 가시, 누군가의 날카로운 발톱은 결국 미리 들어가 있던 동물들로 하여금 이리저리 비키며 자리를 만들게 하죠. 빼곡하게 동물들로 들어찬 소년의 장갑 한 짝은 여전히 추운 눈 속에서 포근하고 아늑한 쉼터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곰이 다가오네요.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장갑 속에 포개지다시피 자리 잡은 동물들에게 곰이 들어올 공간이 있어 보일리 없지요.
 

The animals were packed as tightly as could be.
동물들은 더 이상 빼곡할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가득 차 있었지요.
But, what animal could argue with a bear?
하지만, 어떤 동물이 곰한테 대들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곰의 자리를 만들어 준 동물들. 이제 장갑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어요.


It was pulled and bulged to many times its size.
그 장갑은 당겨지고 불거져서 원래 크기의 몇 배로 커졌어요.
But, Baba's good knitting held fast.
하지만, 할머니의 솜씨 좋은 뜨개질은 단단히 버티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맹랑한 생쥐 한 마리가 장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딱 한 자리 남아있는 곰의 코 위에 자리 잡네요. 그리고, 그 생쥐 때문에 "간질간질, " 곰은 그만 엄청난 힘으로 재채기를 하고 말지요. 그 바람에 터질 것처럼 장갑을 채우고 있던 동물들은 장갑과 함께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갑니다.
 


 
이제, 하늘 위로 떠오른 하얀 장갑... 누가 발견했을까요? 



 
얼마 전 첫눈치고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내려 삽시간에 사방을 눈으로 덮어 버렸었지요. 찬바람에 코끝이 찡해지고 어깨가 움츠려드는 요맘때면, 저는 보드랍고, 포근한 뜨개실을 골라 무언가를 뜨곤 합니다. 오늘은 아직도 여기저기 자취가 남은 눈과 차가운 바람 덕에 뽀얗고 보드라운 뜨개장갑을 모티브로 하는 이 그림책이 떠올랐지요. 


"The Mitten"은 우크라이나의 전래동화를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Jan Brett이 다시 그리고 다듬어서 내놓은 그림책입니다.  뜨개질과 자수로 한 땀 한 땀 만든 듯한 프레임 속에 추운 나라의 이야기답게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묘사된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페이지마다 가장자리를 꾸며주는 자수 장식들은 그림들을 마치 정교하게 짜인 타페스트리처럼 보이게 하고요. 이런 그림의 특징은 작가의 다른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여행을 무척 즐긴다는 작가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림책의 소재와 배경을 모은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이 그림책의 배경은 정말 동유럽의 어느 눈 내린 숲 속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 이 책의 페이지 구성은 하나의 재미난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요.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한 장의 그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중앙부에서는 메인 스토리를, 좌측의 창에는 숲 속을 탐험하는 소년 Nikki의 모습을, 우측의 창에는 다음에 장갑에 탑승하게 될 동물의 모습을 예고편처럼 슬쩍 보여주고 있지요. 글로 다 전해지지 않는 스토리의 뒷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저희 아이들이 아주 아기였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그림책이 하나 떠올랐는데요.  다다 히로시 작가의 "사과가 쿵(오디오북:  https://www.youtube.com/watch?v=q7LtmmQBqJE)" 이라는 그림책이에요. 어디에선가 떨어진 커다란 사과를 여러 동물들이 나누어 먹고는 남은 사과를 우산 삼아 다 같이 비를 피하는 단순한 이야기였지요.
 

 
이 두 그림책에서는 서로 다른 다양한 동물들이 하나의 자원(?)을 공유하고 나누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살짝 곤란한 날씨가 동물들을 하나의 피난처로 모이게 한다는 점도 공통점이지요.
 
비록, "The Mitten" 속의 동물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따뜻한 안식처를 공유하지만, 엄청나게 늘어난 하얀 털장갑 입구로 코와 눈만 빼꼼히 내민 동물들의 모습에서 동지애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할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장갑을 잃어버린 채 헤매 다니는 소년의 실수 덕택에 이 귀여운 동물들이 공유하게 된 우스꽝스러운 짧은 동거...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그들이 잠깐 동안 나눈 체온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따뜻한 기억 한 조각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덤벙대는 소년이 마지막에 자기 장갑을 찾아서 따뜻한 할머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다행입니다. 비록, 장갑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작가 웹사이트  https://www.janbrett.com/
원어민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https://www.youtube.com/watch?v=7lAg8TRraHc
권장 연령: 1~5세   / Lexile 지수   600L (Preschool ~ Grade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