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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진 Dec 10. 2024

떼쟁이 우리 아이, 엄마 입장이 한번 되어 볼래?

그림책 "If You Give a Mouse a Cookie"





MZ세대들의 어린 시절 속에 "뽀로로"가 있다면, 70년대에 태어난  X세대들에게는 "아기공룡 둘리"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초통령의 아이콘이었지요.


어렸을 때는 사실, 둘리와 그의 친구들의 우당탕탕 대소동을 보며 웃고 즐길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보게 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더군요. 정신을 쏙 빼놓는 악동들에게 휘말려 집도 재산도 내어주고, 집주인이지만 거의 더부살이하는 애완동물의 취급을 받는 꼰대 아저씨인 "고길동"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게 되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동일시하게 되는 대상이 바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 "둘리"만큼 악랄(?)하게 집주인에게 빨대 꽂고 살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집주인을 지쳐 나가떨어지도록 만드는 귀여운 꼬마 손님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집 앞마당에서 한가하게 쿠키를 먹으며 만화책을 읽던 한 소년이 귀여운 꼬마생쥐에게 쿠키를 권하면서 시작됩니다. 쿠키를 받아 든 생쥐는 쿠키와 함께 먹을 우유를 원하게 되거든요.


If you give a mouse a cookie,  만약 당신이 생쥐에게 쿠키를 준다면,
He's going to ask for a glass of milk. 그는 우유 한 잔을 원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생쥐의 요구사항이 우유 한 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우유를 먹은 생쥐는 우유가 입가에 묻었는지 확인하려고 거울을 보다가 삐져나온 머리털을 정리하고 싶어 집니다. 가위로 자기 털을 정리한 이 생쥐, 어지러 놓은 방을 쓸기 위한 빗자루를 요구하네요.


He might get carried away 그는 어쩌면 방을 쓰는 일에 너무 몰두해서
and sweep every room in the house. 집안의 모든 방을 쓸게 될지도 몰라요.
He may end up washing the floors as well. 결국 그는 바닥도 다 닦게 될지도 모르죠.


부탁받지 않은 이 노동을 하느라 지친 생쥐는 낮잠을 잘 폭신한 잠자리가 절실합니다.(심지어 생쥐가 한 청소는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생쥐를 위해 잠자리로 쓸 작은 상자에 담요까지 준비한 소년에게 책을 읽어 달라던 생쥐는 낮잠을 자기는커녕 책 속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죠. 물론, 종이와 크레용을 준비하는 것은 소년의 몫이고요.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냉장고에 붙이려던 생쥐는 목이 말라서 우유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유는 당연히 쿠키랑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마침내 이 쿠키와 함께 하나의 순환이 완성됩니다.




그림책 중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 혹은 보호자의 역할과 그들의 심경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짜인 이야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보호 대상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깜찍하지만, 사고뭉치인 동물들이지요.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아주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결코 길지 않지만 리듬감 넘치는 글은 끝말잇기처럼 연결되는 생쥐의 행동과 요구조건을 따라가고 있는 반면, 따뜻한 색감의 그림은 생쥐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려는 소년의 고군분투를 주로 묘사하고 있지요. 결국에는 생쥐를 무릎에 앉힌 채 쿠키를 들고 졸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이를 때 까지요.





사실 이 책 속의 생쥐는 무조건 원하는 것을 늘어놓기만 하는 떼쟁이는 아닙니다. 자신이 어지러 놓은 방을 치우려는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이는 걸요.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생쥐의 모습은 그저 흔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다만, 이 책의 소년은 생쥐만큼이나 모든 일에 서툴러서 결국 이 이인조는 집안을 온통 어지르고 말지요. 하지만, 우리 부모들도 처음 아이들을 돌볼 때 그렇게 서투르지 않았던가요?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희 집의 모습도 이 이야기 속의 집안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랍니다.


그래서 우당탕탕 사건들의 작은 원을 그리고 있는 이 재미난 이야기 속에는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의도가 살짝 숨겨져 있습니다. 부모는 귀여운 생쥐의 모습을 보며 마냥 에너지에 넘치고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를 더 잘 이해하게 되겠고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생쥐의 요청사항을 들어주느라 지쳐버린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소년의 고난에 동정의 눈빛을 보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바라건대 그 동정의 마음 한편에 자신들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부모의 어려움과 서투름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싹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제 딸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어주자마자 "Mom, let's bake some cookies!"를 외쳐서 그날 오후 부엌을 온통 쿠키 반죽과 아이싱으로 덮어버렸었답니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이해는 꼭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이에요~^^


아홉 번이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한 끝에 작가 Laura Numeroff의 첫 출판작이 된 이 책은 현재 60쇄 중쇄를 찍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힌 책입니다. 이 책으로 시작된 "If you give~" 시리즈의 대부분의 책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영부인들이 아이들을 초청하여 읽어주는 단골 도서가 되기도 했답니다. 혹시 이 귀여운 이인조의 소동이 마음에 드신다면, 비슷한 구성을 가진 이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도 충분히 흥미로운 Story Time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작가 홈페이지    https://lauranumeroff.com/

원어민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https://www.youtube.com/watch?v=TRtSJ5Zu4MM  

권장 연령   2~5세 / Lexile 지수  AD 41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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