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직러의 하루하루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좀 양아치 같았지만 이 분은 그래도 다른 미용사들에 비해선 좀 덜 무서운 편인 것 같았다. 머리를 하는 긴 시간 내내 대화를 끊이지 않고 재밌게 나눠서 재밌었다. 이 분도 신기하게 나에게 MBTI를 물어보았다. 그래서 내가 답했더니 그 미용사분이 자신의 MBTI랑 자신의 배우자 MBTI까지도 말해주고 또 내 혈액형 물으면서 그 혈액형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분에게 2년 정도 머리를 맡겼었는데 이렇게 먼저 말 많은 거 처음 본다. 물론 내가 먼저 근황을 묻긴 했지만 말이다. 머리 가격 낼 때는 2년 전 가격에 해줘서 고마웠다.
점심 먹을 때 같은 팀의 팀원인 B가 나랑 멀리 떨어져 앉으려고 해서 소외감, 버림받고 무시받고 조롱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B가 예전에 나한테 시킨 업무를 다해서 업무 파일을 B한테 보내줬더니 처음부터 다 잘못했다고 업무 방법을 이제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난 그 업무 하느라 몇 시간 걸릴 정도로 오래 걸렸어서 정말 화나고 억울하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한 느낌이었다.(이 업무를 A랑 B가 내게 준 것이다. 근데 받으면서 뭔가 선임 허락 없이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저한테 일을 준듯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선임이 처음 보았는데 그때 선임이 했던 말이 '이거 왜 하냐'는 것이었다. 선임은 내게 물었는데 A가 당황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대답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답답했다. A, B는 자기들만 일하기 싫어서 나한테 선임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준 것이면서 어떻게 업무를 해야 되는지도 안 알려주고 정말로 나에게 텃세 부리려고 작정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A, B가 너무 밉고 그런 업무를 열심히 했던 내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외근 가는 날이 있었는데 지난주에 외근 갔다가 선임이 교통사고 나서 그런지 이번에는 팀장님도 함께 외근을 갔다. 나는 외근 가기 전날부터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팀장님과 함께 선임, A, 나 이렇게 넷이서 함께 외근 갔을 때 내가 말을 아예 못 하고 쭈삣거리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해야 되는 일도 못하고 사회성 없는 모습 보일까 봐 또 친구도 없는 것이 들통날까 봐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사무실에 신발을 두고 와서 뒤늦게 팀장님 차에 탔는데 내가 타기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면서 떠들던 차 안이 싹 조용해졌고 이게 차 타는 내내 계속 유지되었다. 차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차 시트 좋다고 운을 띄웠더니 팀장님이 나에게 몇 시에 일어나냐고 물어서 5시에 일어난다고 답했고 몇 시간 자냐고 물어서 최소 6시간은 자야 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팀장님이 그러면 나중에 일할 때 곤란할 텐데라고 대답해서 지난 첫 직장에서는 2-3시간 정도 잤었다고 답했다(놀랍게도 사실이다). 그런 내 대답에 차 안은 조금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러고 점심시간이었는데 팀장님이 A한테만 엄청 질문하는 것이었다. 질문도 엄마, 아빠 나이 몇 살인지 등이었는데 나도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서운하고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팀장님이 나한테 ‘A가 너와 다르게 참 리액션을 잘하는데 네가 보기에는 어때?’라고 팀장님이 물어봐서 난 ‘A님이 리액션 너무 잘해서 계속 사실 놀라고 있었어요.’와 같이 대답했더니 팀장님은 ‘이렇게 리액션을 잘해야 된다’, ‘이렇게 리액션 잘하면 좋다’와 같이 말했다. 또 팀장님과 A가 단둘이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지 팀장님이 그때를 언급하면서 ‘A가 리액션 너무 잘해서 오랫동안 회의했다.’와 같이 팀장님이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이때 수치스럽고 팀장님께 억울하고 화나는 느낌이 올라왔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는 리액션을 잘 못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리액션 잘 못해서 이런 말이나 듣는 내가 더 싫었다. ‘리액션을 잘해야 된다’는 관념이 무척 억울하다. 나는 리액션을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성격을 태생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노력을 해서 리액션을 과하게 하면 그런 내가 창피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주변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 같아서 리액션을 더 못하게 되는 것도 있다. 내가 평소에 아부를 떠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리액션을 애써서 잘하려는 나를 아부를 떤다고 느껴지니 그런 나를 또 싫어해서 더 리액션을 못한다.
외근 때 내가 뭘 해야 될지 몰라서 가만히 서서 선임과 A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팀장님이 내게로 와서 나한테 간단한 업무를 지시했는데 그 말을 A가 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A는 해야 되는 다른 일도 있는데 자꾸 팀장님이 내게 지시한 업무를 빼앗듯이 빈번히 해서 짜증 났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없는데 자꾸 내 일을 뺏고 나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서 너무 화가 났다. 팀장님이 보기엔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니까 A가 아까 팀장님이 내게 지시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미치겠는 기분이었다. 난 경쟁이 이해가 안 되고 정말로 싫어했다. 그래서 경쟁에서 패배한 채로 있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팀장한테서 미친 듯이 잘 보이려는 A 때문에 나는 팀장님이 내게 지시한 일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했다. 또 팀장님, 선임과 내가 비교적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그런데 내가 조금이라도 일하려고 하면 A가 저를 질투하는 게 느껴져서 싫었고, 조금이라도 질투해도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내 일을 할 뿐인데 그런 날 똑같이 따라 하려는 A가 정말 싫었다. 이 A가 지난 외근 때는 내내 열심히 안 하다가 팀장님이 있는 이번 외근에는 너무 열심히 하려는 게 느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선임님이 어제 외근 나가서 선임에게 말 걸던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날 예뻐하는 게 갑자기 느껴졌다. 그런데 그 A, B가 즉시 절 질투하는 게 느껴져서 이들이 힘을 합쳐서 날 괴롭힐까 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내가 내게 생긴 좋은 것도 그저 좋아하지도 못하는 게 슬퍼졌다. 그리고 선임에게 드는 생각이 몇 가지가 있다. ‘내가 떨떠름하게 선임이 준 과다한 업무를 받으면 선임이 그런 날 싫어할까 봐 무섭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이 많은데 내가 퇴근을 일찍 하려고 해서 선임이 날 싫어할까 봐 두렵다.’였다. 한편 A와 B와 관련해서는 내가 일 욕심 있는 게 보여서 나에게 일을 안 알려줄까 봐 두려워지는 감정이 들었다.
그 전날 저녁에 도시락을 준비할 때부터 엄청 걱정과 두려움, 불안,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다음 날인 점심시간 때 딱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타 팀인지 새로운 얼굴이 또 1명 있었고 안면이 있지만 양아치 같은 타 팀 1명이 있었으니 총 두 명이 이미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A, B도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A, B, 나, 타 팀 둘 이렇게 총 다섯이서 도시락을 한 공간에서 함께 먹었는데 말 한마디도 못 할까 봐 공포스러울 정도로 무서웠다. 그 날라리티 나는 타 팀 1명과 A가 나를 또 굉장히 불편했는지 내게 ‘밖에서 밥 먹을 생각은 없어요? 이렇게 계속 도시락 싸 올 거예요? 밖에 식당 많아요~먹을 데 많아서 맨날 밖에서 잘 찾아서 드실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또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채로 그대로 있었더니 생각보다 편안하게 대화가 오고 가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조금 만족스럽게 식사했다.
첫 직장에서 나와 경력이 한 달밖에 차이 안 나던 내 옆자리인 팀원과 굉장히 친한 타 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그 사람과 전혀 친하지도 않은데 날 무척 미워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퍼뜨린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믿고 날 오해하는 바람에 날 지독히 싫어하게 되었다. 날 멋대로 오해하는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오해받아서 억울했다. 그 사람 외에도 첫 직장에서 그렇게 남의 말만 믿고 날 오해하는 그 사람들을 볼 때 너무 억울해 미치겠고 증오스러운 느낌이 올라왔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를 일부러 찾아와서는 내 주변에 맴돌며 무척이나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갔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가 나랑 단 한 번도 얘기해 본 적도 없는 이들이다. 더 억울해 미치는 아픈 첫 직장 기억이다.
점심시간 때 내 옆에 지난주에 같이 식사했던 타 팀 한 명이 앉았다. 근데 이 분이 묘하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질문할 때 내가 답하려던 거에 자꾸 끼어드는 것이었다. 이분은 갑자기 말라리아모기를 얘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이분에게 내가 ‘도시락 보자기가 바뀌었네요.’와 같은 평볌한 질문들을 했는데 그분이 대답은 하지만 날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무척 정색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무시하면서 자신이 하던 이야깃거리를 계속 이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정면에 마주 않은 타 팀 다른 한 분이 자꾸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때 느낌이 창피하고 굉장히 싸하고 가슴 가운데가 묵직하고 명치 쪽이 따끔거리면서 아팠다. 저렇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못 만드는 나를 조롱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간식거리로 들고 온 초록색 초코파이를 먹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거 맛있냐고 물었다. 나는 '맛있긴 한데 한 번만으로 족하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에 날 투명인간 취급하던 분이 대뜸 본인이 간식으로 색을 맞춰서 초록색 간식만 사 왔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회사 탕비실 문화가 본인 간식이 많으면 탕비실에 그 간식들을 나눔 하듯이 놓고 간다. 그래서 내가 '아~그럼 그 초록색 쿠크다스도 사 오신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맞다'고 대답했다. 난 그 말에 '제가 초록색 쿠크다스가 최애인데 그 간식이 탕비실에 있어서 반가웠다.'라고 말했더니 '다행이네요.'라는 대답은 들었다.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까 제가 3번이나 '한 번만 먹을만하다'고 말했던 초록색 초코파이도 이 분이 가져온 거 같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이것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분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를 대하는 그분의 행동이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미치겠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점심 먹을 때 그분이 날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모든 대화에서 나를 아예 배재시키려고 할 때 나도 똑같이 그분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싶은 느낌이 심하게 올라왔다. 그래서 조소하듯이 비웃음이 나는 바람에 참으려고는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새어나간 걸 몇 명은 본 것 같았다. 그때 나에게 든 생각은 '당신이 왜 그러는지 다 알아. 당신이 그런다고 내가 당신한테 굽힐 줄 알아? 난 당신이 내게 한 것보다 더 심한 것도 겪고 왔어.'라는 것이었다. 점심식사 끝나고 잠깐 그 분하고 단둘이 있을 기회가 있어서 내가 '동생하고 몇 살 차이 나요? 6살 차이요? 너무 귀엽겠다.'라고 말하니까 그분이 '되게 귀여워요.'라고 웃으면서 짧게 답했다. 이 웃음은 예의상 한 것 같은데 그분의 마음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번 직장은 일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a라는 업무를 받았는데 b라는 업무가 생긴다. 그래서 a랑 b를 동시에 하던 중에 c라는 업무를 또 받는다. 심지어 a, b, c를 하루이틀 만에 다 끝내야 된다. 내가 슈퍼맨인가 싶었다. 유독 이번 직장은 첫 직장에서 하던 업무와 거의 비슷했다. 첫 직장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는 회의가 되게 많았는데 이번 새 직장도 그랬다. 첫 직장에서는 회의에서 내가 아이디어 내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다 조롱당하고 없는 셈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은 퇴사 전에 내가 완성한 업무는 가장 잘 나왔다. 나와 협업하던 팀도 내 업무 파일만 오래 신경 써주었다. 원래는 그 협업팀 쪽에서 먼저 말 거는 경우가 없는데 이 팀이 내게 먼저 말 걸어서 업무 파일이 더 잘 되게 하려고 봐줬다. 그걸 또 팀장이라는 사람은 극심하게 질투해서 단체 메신저방에서 '협업팀에서 너만 업무 파일 봐주는 거야? 이상하네. 협업팀이 봐주는 또 다른 사람 있어?'라고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했다. 난 협업팀에게 아무런 부탁도 먼저 붙여본 적이 없었고, '본인들도 그럼 업무를 잘하던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억울했다. 이번 세 번째 직장에서도 아이디어 회의할 때 내가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팀에 보여줄 때에도 '나의 아이디어를 모두가 다 무시하고 묵살할 텐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가는 게 의미가 있나? 대충 하자.'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아이디어 내라는 업무가 많아져서 큰일이다. 나는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이기에 아이디어를 고통스럽게 짜내느라 괴롭고 머리 터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