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무렵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비혼이니 뭐니 해서 30대 중반에도 충분히 늦지 않은 결혼이라 하지만 지방에 사는 지라 20대에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내 옆의 사람과 곧 할 거라 생각했다.
남자친구와 교제를 시작할 때 난 우리 서로의 끝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선언했다.
남친 또한 동의하에 그렇게 시작했고 불과 1달도 안되어서 동거를 시작했었다. 임차 기간이 끝나갈 때 무렵에는 옮긴 전셋집을 둘이 매매하기로 결정하여 계약서를 다시 쓰기로 했다.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받은 건 아니지만 서로 결혼을 동의하는 무언의 약속이었기에 남친은 계약서 서명을 위해 제주도 출장에서 비싼 만년필까지 사 왔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던 날 만년필이 불량이어서 글씨가 잘 안 써졌다고 했는데 그게 아마 우리의 인연을 예지 해 준 것일까.
아무튼 나는 거액의 돈을 차용증 없이 그에게 이체해 주었고 그 집에서 1년가량 지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지 언 2년쯤 되던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남친. 아직도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 인연이 아니라는데 이유가 어딨겠나. 내가 매달리며 이유를 물을 때 난처해하던 그의 표정이 생각난다.
그로부터 정확히 10개월 정도 난 방황했다.
하필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어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살도 많이 찌고 사람도 회피하며 약간 넋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물론 돈은 벌러 다녔지만. 처음 헤어진 8월엔 정말 힘들었어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기 싫은 마음. 동생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길가에 있던 풀을 꺾고 들어간 바다에서 물속에 떠 하늘을 바라보며 이대로 쭉 바다로 흘러들어 가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아마 그전부터 조금 있던 우울증은 그를 만나고 좋아졌으나 다시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었고 이겨내려고 직장을 멀리 옮겨 기차를 타고 출퇴근까지 해왔는데 아마 이런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으리라. 우울증 때문에 폭식증이 생긴 나는 헤어질 무렵엔 남자친구보다 더 뜽뚱하게 살이 올라있었고, 성욕도 없어져 잠자리는 회피했다. 무기력함을 이겨내려고 옮긴 직장이었는데 정작 집안일은 손도 못 댔고, 아마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남자 친구는 미래가 안 보인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나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마음속엔 슬픔과 배신감 분노가 가득 차 나 자신을 돌볼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었을 때 남자친구는 이제 집을 정리할 테니 비워달라고 했다. 그때 내가 줬던 돈도 일시불로 돌려줬고 난 그 돈을 받고 이사를 나갔다. 이래저래 꽉 막힌 상황이었어서 하는 수 없디 난 내 모든 짐을 가지고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두 집 살림이 합쳐지니 집이 정말 창고를 방불케 했다. 얼마나 그곳에 있기 싫던지. 옷이며 가구며 테트리스처럼 쌓인 방 안에서 나도 그 일원처럼 숨죽여 잠을 자고 눈을 뜨면 또 기차역으로 가 60킬로 떨어진 직장으로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참.. 친구들은 결혼준비 하면서 행복에 겨워 점점 예뻐지는데 나는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뚱보가 되고 있었다.
다시 돌이켜봐도 참으로 우울했던 시절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우울하고, 뚱뚱하고, 무기력하고, 무얼 해도 버겁고, 백 킬로짜리 쌀가마를 어깨 위에 항시 올려놓고 살았던 때였다. 멍청하게도 나는 약도 먹지 않고 나 자신을 내방 쳐 두었다. 이사를 나온 후 동생이 오래 타던 경차를 던져주며 면허를 따오라고 했다. 학원도 다니진 않고 시험 3번 만에 면허를 따서 곧바로 고속도로로 나갔다. 평이했던 내 인생에 오래간만에 퀘스트가 던져지니 조금 활력이 돌았다.
우울했던 겨울이 끝나고 삼재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조금 나아졌다. 정확히는 숨 고르기를 끝마치고 싹을 틔울 준비를 마쳤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