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진 맞춤가구
조차장의 이력서는 아직 11년 전 그 상태이다.
이제 슬슬 이력서를 수정해서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조차장이 회사에서 보낸 10년 간의 이력을 뭐라고 요약해서 기술해야 할까.
조차장은 본인의 경력이 너무 너저분해 보였다.
까닭은 이렇다. 조차장은 10년을 넘게 근무하는 동안 보직이 계속 바뀌었다.
입사는 온라인 MD로 했다. 예전 경력을 살려 입사를 했고, 영업팀 온라인파트장으로 2년을 일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신사업을 하게 되고 마케팅팀을 개설하게 되었다. 조차장은 인사이동으로 마케팅이 포함된 신설부서, 사업기획파트장이 되었다.
4년 후 사업기획파트와 영업지원파트가 통합되었다. 기존 사업기획파트 업무와 해외소싱, SCM파트가 병합하였고 팀명은 운영팀이 되었다. 조차장은 다시, 운영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회사는 또다시 조직개편을 했다. 조차장이 맡던 마케팅파트를 디자인부설로 보내고, 그 외 운영팀 전체와 경영지원팀을 합쳤다. 조차장은 경영지원팀장이 되었고 해외소싱, SCM파트, 인증 및 개발, 총무회계를 총괄하게 되었다.
이 중 조차장의 주요 경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온라인 MD, 기업 영업, 마케팅, 영업지원, 총무 회계, 수출입 재고관리.
조차장은 '이 일을 누가 하지?' 하는 일의 담당자였다.
마케팅이 필요하면 마케팅을 진행하고, 오프라인 페어 기획 전시 및 판매를 했다. 한참 라이브커머스 붐이 일었을 때 방송에 나가 회사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상표권이나 법률 관련 작업이 필요하면 자문을 구해 서류를 작성하였으며, 메인비즈 신청이나 하이서울 등 회사 인증에 필요한 소개서를 작성하고 신청했다. 내자구매나 온라인발주 등 SCM 실무자가 공석일 경우 임시로 대행하기도 했다. 필요하면 거래처 미팅을 해서 업무 협의를 하고, 회사 재고관리 시스템 개발을 맡아 운영했다. 때마다 해외 출장에 동석하여 미팅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 뚜렷하게 조차장의 JOB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조차장은 이력서를 쓰려다가 너털웃음이 났다. 경력을 어떻게 기술할지도, 구인구직 사이트의 어떤 직무군을 선택하여 회사를 검색해야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신규 사업을 시작하시나요? 프로젝트 사업 전문인력이 여기 있습니다.'이라고 소개할까 마음속으로 자조 섞인 블랙코미디를 던지곤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맞춤 가구가 된 기분이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여 만들었지만, 이사 가는 집에는 맞지 않아 쓸모가 없어진, 이 전 집의 맞춤가구.
뭐든 경험이고 경험은 자산이 된다고하지만, 애매해진 경력기술서를 보면서 후회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을 하면 모를까, 이런 경력을 제대로 살려서 이직할 수 있을까?
조차장은 '일이든 사람한테든 필요로 한다고 해서 나를 너무 맞출 필요는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 진작에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일을 잘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야 했다.
조차장은 사회생활을 한 지는 18년이 넘었다.
그녀의 경력은 과연 몇 년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