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회 안 합니다.

퇴근하듯, 퇴사하겠습니다.

"팀장님, 진짜 송별회 안 할 거예요?"

인수인계를 받던 J가 물었다.

"... 네."

J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송별회라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몸이 굳는 것 같다.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시점부터 송별회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혼자 감정이 복받쳐서 울 것이 뻔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후문을 남기는 것도 모두 끔찍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할 사람들과 함께 울어줄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모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었다.

안 그래도 이곳에서의 내 모습이 끔찍한데, 여기서 내가 더 싫어졌다가는 정말 위험하다.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퇴사 후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계획조차 세울 기력도 의지도 없는 상태로 나가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초라한 것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인맥도 시야도 모두 넓고 높아졌어야 했는데, 땅굴만 더 촘촘하고 깊게 파느라 바깥세상엔 더 깜깜해져 버렸다. 완벽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11년 차 개구리.

남이 나를 이렇게 깎아내려도 '어디 내 능력을 보여주지.'라며 당당해야 하는데, 스스로 먼저 이렇게 자신이 없으니 그것이 초라하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리고 싶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나의 마음 면역력은 제로, 꽃으로 때려도 K.O가 가능한 상황이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해도 잘할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사이에서 도저히 일어서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 가기도 싫고 무엇을 하기도 싫다.

따뜻한 사람들.

마지막  몇 년은 정말 동료들 덕에 회사를 다녔다. 내가 그만두면 다들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한데 혼자만 도망가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사람을 구하지 않고 내 일어 찢어 동료들에게 나눠 줄 것이라는 걸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것보다, 동료들에게 내가 그만두기로 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송별회를 하기가 싫다. 회포를 풀기 싫다.

 그냥 '트루맨쇼'의 짐캐리처럼 짧고 밝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퇴근하듯 퇴사하고 싶다.

 "내내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