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조 Nov 13. 2024

거래처로 이직하면, 배신일까?

복수를 다짐하는 사장님

"똑. 똑."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사장님실에는 사장님, 영업팀장, 영업팀 김 과장이 앉아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 걸까? 사무실 공기가 쾌쾌하다고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침묵. 왜 부른 것일까.

사장님은 테이블 옆 라디에이터에 놓인 소주 뚜껑을 열었다. 컵도 없이 벌컥벌컥 소주를 마신 뒤,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말해봐, 이진건이 나갈 것 같아?"


아. 이 것 때문에 부른 것이었구나.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나간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네가 팀장이니까 그래도 알 거 아냐? 네가 봤을 때 나갈 것 같냐고 물어보는 거야. 네 판단을 얘기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퇴사하는 사람들 보면, 오래 일할 것 같은 사람들이 나간다고 하고 또 금방 나갈 것 같은 애들이 오래 일하기도 하니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의 크고 붉은 눈이 가까이 다가왔다.


"X발.. 저 새끼... 내가 지금! 하아. 내가 지금 당장 가서 망치로 뒤통수를 치고 싶은데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서 참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똑바로 대답해. 이진건이 나가, 안 나가?"


내가 지금 뭘 들은 걸까? 평소에도 고압적인 태도와 말씨를 쓰는 사장님이지만, 이건 그 정도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었다.


"사장님, 저 지금 무서워요. 그만해 주세요."


"너 내가 무서운 사람인 지 몰랐어?!"


무서우니 그만해 달라는 요청이 사장님을 더 격앙시켰나, 무언가 도취된 듯 한층 더 고조된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다시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김과장, 내일 김대영이 만나. 만나서 김대영이 만나서 물어봐. 지금 네가 그리고 있는 그림 다 말하라고. 김대영이 그림 그리고, 왕진호랑 이진건이가 따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상수한테 시켜서 이진건이 PC 확인해 보라고 해. 이메일 보낸 거, 외부로 데이터 빼돌린 거 없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라고 해. 김대영이가 그림 그리고, 이진건이가 우리 회사 정보를 빼돌리고 있어."


왕진호는 우리 회사 영업사원이었다가 지난봄에 퇴사하고 거래처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최근 왕진호의 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물건 공급을 중단하고 월마트 쪽에 직접 납품을 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런데 왜 김대영과 이진건이 이 스토리에 엮여 있는 걸까? 게다가 김대영과 왕진호는 각각 다른 회사에 다닌다. 


"이진건이 어떤 정보를 빼돌리는데요?"


"우리 회사 제품 단가! 거래처에서 받는 우리 회사 단가랑 우리 회사 공급가! 이진건이 왕진호한테 우리 회사 단가랑 공급가 다 알려주고, 왕진호가 그 정보를 알고 월마트에 우리보다 더 낮게 제안을 하는 거라고! 왕진호는 그럴 머리가 없어. 이런 그림을 그릴 줄도 몰라. 다 김대영이가 계획한 거야. 김대영이 시키고, 이진건이 데이터 넘기고, 왕진호가 진행하는 거야. 이진건이는 다음 달에 청년 내일 저축이 끝나. 그거 받자마자 그만둘 거고. 우리 회사 데이터를 주는 대신, 자리 하나 약속받았겠지."


김대영이 퇴사한 지는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이직 직 후, 김대영이 이직한 거래처에 사장님과 이사님이 직접 찾아가서 김대영이가 7년 동안 회사에 얼마나 손해를 끼치는 직원이었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왕진호는 김대영의 후임이었다. 왕진호는 김대영이 나가고 6개월간 더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들은 그의 퇴사 사유는 '더 이상 못하겠어서'였지만, 사장님이 아는 그의 퇴사 사유는 '회사 정보 팔아먹고 연봉을 더 얹어주는 회사로의 이직'이었다.


왕진호가 나가던 날, 사장님은 영업팀과 번개 회식을 했다. 당일 송별회가 취소된 왕진호는 이진건과 둘이 저녁을 먹었다. 송별회 잘하고 있냐고 연락을 했던 김대영이 이 이야기를 듣고 둘을 회사 근처로 불러 술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진건은 왕진호와 김대영이 담당하던 제품들의 구매담당자였다. 왕진호, 김대영과는 다른 팀이었지만 업무 특성상 같은 팀보다 그들과 한 팀처럼 일했다. 


왕진호가 나간 뒤, 사장님은 말했다.

"다음 순서는 이진건이야. 두고 봐라, 내 말이 맞지."


사장님은 이진건을 카카오톡 친구에서 차단했다. 사장님은 그 이유가 이진건이 회의 중에 볼펜을 집어던져서라고 설명하며 분노했다. 나도 그 회의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다. 사장님은 내가 이진건이 볼펜을 집어던지는 걸 못 본 이유가 내가 눈을 감고 있었거나 안 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이진건에게 매일 같이 화가 났다. 회의 중 본인이 말을 하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거나, 성의 없이 말하거나 보고하는 태도가 불성실했고, 어느 때는 회의가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방관을 했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이진건은 담당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한 달 뒤, 이진건은 청년 내일채움 만기를 채우고 그만뒀다. 그리고 김대영이 다니는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이직했다. 내가 들은 그의 퇴사 사유는 '더 이상 못하겠어서'였지만, 사장님이 아는 그의 퇴사 사유는 '회사 정보 팔아먹고 연봉을 더 얹어주는 회사로의 이직'이었다.


이진건의 퇴사 보고를 받고 사장님이 말했다. 

"모든 게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구나."


사장님은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관했다고 했다. 방관자에게는 그 책임이 따라야 했다.


연좌제의 다음 타깃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송별회 안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