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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1. 2024

극 I로 20년째 사는 중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극 I로 태어나고 말았다. 글 쓰는 건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건 그다지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니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먼저 말도 걸지 않는다. 그래서 20년 동안 '신비스럽다'는 평을 줄곧 받아왔다. 만나기도 힘들고, 설령 만나도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전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집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면서부터는 말수가 '0'이 되었다.


또 우리 집안은 대체적으로 내향적이다. 부모님, 동생도 말이 적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밥을 먹으면 왜 한 마디도 안 하냐는 소리도 듣는데, 사실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면 정말 '식사'만 하고, 애초에 같이 안 먹고 따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 우리 사촌 동생만은 예외다. 마치 '이단아'처럼 사촌 동생은 쉴 새 없이 말한다. 그래서 때때로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내향적인 성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마치 화난 것처럼 보인다고도 하고, 마주치고도 인사를 안 한다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건축이나 미술, 역사, 사회여서 그 생각에 빠지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점은 분명히 크나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할 때도 머뭇거리고,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이 있으면 난 충격과 공포에 빠져든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다. 외부 세계가 적다는 건 그만큼 내부가 풍부하다는 소리니까. 혼자 있을 때면 난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고, 때로는 밖에 나가 짓고 있는 건물들을 감상한다. 건물은 짓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아직 땅만 있으면 무산될 수 있고, 다 지으면 무언가 시시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콘크리트 상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또 혼자서 집중하기도 하며, 방해되는 것이 적어 공부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혼자 집중하며 만드는 공예나 예술, 공부가 나의 주 특기로 자로 잡았다.


문제는 이 생활이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사람을 잘 안 만나니 오로지 나를 위해 살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즐거움에 빠져 다른 건 모르는 것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이렇게 글을 쓰거나 옛 문인들처럼 산천을 거닐며 자연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러면 결국 나이가 들어 고독사할 것 같으니 그것이 걱정스럽다. 70대인 내 친척 할머니는 나보다 인맥이 넓어 아직도 신명 나게 놀며 사신다. 그런데 내가 70대가 된다면... 윽, 상상하기 싫다. 내 장례식에 와줄 사람이나 있을까?


아직 인생을 다 살지 않아서 이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고독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뛰어난 연구로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일단은 살아 보려고 한다.


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 됬고, 그냥 뒷산에 가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지금은 공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청설모 한마리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손에 맛난 도토리를 들고서. 고놈 운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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