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눈

혐오와 갈라치기의 시대

by chiimii

요즘 세상이 ‘혐오’로 가득 찬 것 같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는 영상들이 난무하고 댓글을 보면 ‘이 사람들 내가 지하철, 버스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겠지’ 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비상식적일 때가 많다.


최근 유발하라리 강연 영상을 봤다. 알고리즘이 혐오를 양산한다. 우리는 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컨텐츠에 오래 머문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만든 가짜뉴스가 어느새 여론이 되어 들끓고 있다. 사람들은 심플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복잡한 것을 쉽게 도식화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요즘 같이 빠르게 변화하고 모두가 바쁜 사회에서 그 양상은 더욱 심화되는 것 같다. 하이브-민희진 어도어 경영권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복잡한 사건을 ‘뉴진스 vs 아일릿’으로 도식화하면서 사람들은 본질은 잊은 채 희생양들을 이용한 컨텐츠에 놀아나고 있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상당수가 동의하는 여론인척하는 비난의 댓글들. 교대로 마녀사냥의 희생자들이 거론될 때마다 마치 우리사회는 누구 하나 공격할 대상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이 된 것 같다.


각종 SNS에서 갈라치기가 난무한다. 성별 갈라치기는 이제 너무도 흔한 일이고, 문과-이과, 딩크-유자녀 등. 인터넷 속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까내리기 바쁜 글들을 볼 때면 흑백논리와 극도의 이분법적 사고에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저 조회수만 늘리기 위한 아님말고식의 가짜뉴스와 자극적인 컨텐츠들은 점점 더 빠르게 생산되고 확산될 것이다. 사실 무섭다. 그런 것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봐. 그렇지 않기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휩쓸리고 말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라는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보는 사람이다. 나 또한 나이가 들수록 나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고 그 틀에 그들을 가둬버린다. 나 마음대로 단정짓게 되는 것이다. 그건 내가 봐오던 글들, 영상들, 댓글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10년 전, 20년 전만 비교해봐도 지금 우리는 다양하고 복잡한 것들을 너무도 쉽게 답을 내린다. 사랑도 인생도 그 외 사는 데 중요한 모든 것들은 답이 없고 가지각색의 모양을 가졌다. “그녀는 널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건 잘못된 인생이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구절처럼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에도 가지가지 음영이 있는법이다. 진실을 보려는 노력과 함께,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10년 뒤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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