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
2025년 3월, 대한민국은 봄의 초입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을 마주해야 했다. 뉴스 속 자연재해는 언제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날 이후 '산불'이라는 단어는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강풍과 건조한 기후, 그리고 숲 속의 작은 불씨가 맞물리며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번진 이 사건은, 단지 기후적 이상 현상 이상의 문제를 드러냈다. 고령화된 농촌 구조, 산림 관리의 부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부족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이 만들어낸 복합 재난이었다.
2025년 3월 21일, 경상남도 산청군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 불씨는 순식간에 산을 타고 번져나갔다. 몇 시간 만에 불길은 인근 지역으로 번졌고, 이후 며칠간 이어진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는 이 불씨를 전국적 재난으로 키웠다. 불길은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확산되며 산을 넘고 마을을 덮쳤고, 그 와중에 수많은 이들의 삶과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해 28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으며, 이 중 9명은 중상이다. 27,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2,500여 채의 가옥과 건물, 농장, 창고가 잿더미로 변했다. 피해 면적은 43,330에이커, 즉 약 175제곱킬로미터로, 싱가포르 면적의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산불은 7일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진화에만 전국 소방력의 60%가 투입되었다. 총 125대의 헬리콥터, 수백 대의 소방 차량, 군 장비, 드론까지 총동원되었다. 하지만 하늘의 바람은 잔인했고, 불길은 인간의 계획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진화 작업 중에는 안타까운 희생도 이어졌다. 한 퇴직 공군 조종사는 민간 산불 진화 헬기 조종사로 자원해 출동했다가, 강한 연기와 난기류로 인해 기체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그는 73세였고, 은퇴 후에도 후배들을 도와 비상시에는 하늘을 날았다. 산불 진화를 위해 1,200리터의 물을 싣고 마지막 비행에 나섰던 그는, 이 땅의 봄을 지키기 위해 하늘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이야기는 뉴스 한 줄로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기리며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헌신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한, 많은 이들의 사연이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졌다.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에서는 80대 노부부가 불길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자녀는 타지에서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부모님은 평생 서로를 의지하며 사셨어요. 그 마지막까지 함께하셨다는 게 가슴 아프면서도, 부모님다운 선택이었어요." 이웃 주민들은 그들이 집을 떠나지 못한 건 연로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전한다. "그 집은 그분들 삶 그 자체였거든요. 마지막까지 집을 지키겠다는 마음도 있으셨을 겁니다."
산불은 단지 사람의 목숨과 삶의 터전만을 앗아간 것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문화유산들 또한 소실되었다. 특히 '천년사찰'로 불리며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운사는 이번 산불로 인해 전소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이 불길에 휩싸였고, 그간 수차례 보수를 거치며 유지되어 온 역사적 건축물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고운사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승려 교육과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상징적인 사찰이었다. 한 승려는 눈물 속에서 말했다. "이곳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시간이 머물던 자리였습니다. 기도와 침묵, 계절의 숨결이 겹겹이 쌓인 터전이었습니다. 고운사에서 사라진 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삶의 결이었습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또 다른 고찰 법성사도 화염에 무너졌다. 일부 국보급 유물은 사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었지만, 사찰 그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과 정신적 유산은 복원 불가능한 손실이다. 법성사 대웅전의 종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고, 매년 이곳에서 열리던 불교 행사와 주민들의 기도처는 사라졌다. 이를 두고 한 문화재 전문가는 말했다. "문화유산은 시간의 흔적이 배인 삶의 터전입니다. 수백 년을 거쳐 누군가의 기도가 스며들고, 고요한 위로가 오가던 자리였습니다. 이제 사라진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던 기억들입니다."
한편, 구조대가 대피소를 마련한 경북 안동의 체육관에는 수천 명의 이재민이 모여 있었다. 그들 각자의 표정에는 피곤과 슬픔,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전부는 불에 탔어요. 옷 한 벌, 지갑, 핸드폰, 그게 전부예요. 그 속에 내 집, 내 삶, 내 사진이 다 있었는데…” 또 다른 주민은 말했다. “비가 하루만 빨리 왔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늘이 너무 야속해요.”
기상청은 당시 기온이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았으며, 습도는 20% 아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태백산맥을 넘는 강풍은 불길을 산 너머까지 실어 나르기에 충분했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조건이 겹치며 대형 산불로 확산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는 일시적인 이상 현상이 아닌, 기후 변화가 초래한 구조적 재난이라고 입을 모았다. 산림청은 이번 사태 이후, 전국 산림의 화재 대응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치된 임야와 사유림에 대한 관리 대책도 함께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 지원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고, 농기계 및 축사 보상, 산림 복원 계획도 수립 중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들의 삶이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도 있다.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었는가. 산불은 매년 봄철마다 있었고, 경고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사회는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너무도 큰 희생과 상실이었다.
2025년 3월 29일 오후 3시 15분 현재, 산청의 산불은 아직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다. 곳곳에서 잔불이 살아 있고, 불씨가 바람을 타고 재확산될 우려가 여전하다. 산림청은 전국 소방력과 군 병력을 추가로 투입해 잔불 제거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기상 상황에 따라 긴장이 늦춰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산불은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2025년 3월, 이 비극은 수치나 복구 계획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을 남겼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다. 잿더미 속에서 봄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진짜 봄은 이 절망 속에서 서로를 도우며 다시 살아가는 그 마음 속에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봄은 더 이상 계절이 아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어오는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번 봄은, 진정 생명의 계절인가?” 그리고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으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때 비로소, 봄은 다시 봄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다시 피어나기 위해 쓰여졌다.
– 봄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 넋을 위한 시
가장 먼저 불길을 마주한 그대
손에 쥔 무전기 이름 없는 용기
무너진 시간 속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았던 자여
당신의 발자취는 연기 속에서도 선명합니다
함께 손을 맞잡은 두 어르신
끝까지 서로를 안은 그 따뜻한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이었습니다
숨결은 재로 흩어졌지만 그 사랑은 아직 우리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하늘을 날던 조종사여
삶을 내려놓고 물을 들어 불을 끄던 그 순간
고요한 마지막 비행은 타버린 봄에 남겨진 가장 슬픈 희망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름 없이 떠난 수많은 존재들
나무는 타버렸지만 정신은 남아
우리가 새로 심을 숲이 됩니다
고요한 저녁 바람 끝에서 들려오는 이름 없는 기도
그것이 봄이 오기 전
우리가 드리는 가장 진실한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