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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은 감정인가 판단인가

by 정성균

하루를 부르는 이름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시간, 말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늘을 어떤 이름으로 남겨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넘기기에는 하루가 몸에 남긴 감각이 분명하다. 어깨에 남은 묵직함과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생각은 시간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음을 조용히 전한다. 그런 틈에서 ‘만족’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이유를 묻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은 채 오늘을 대신 부르는 말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사용 방식 탓에 이 말은 감정의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차분히 되짚어 보면, 마음의 변화보다 앞서 이어진 흐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하루가 충분했는지를 먼저 따져본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분량이었는지, 이 정도면 넘겨도 괜찮은지를 짧게 가늠한다. 그 판단이 마무리된 뒤에야 마음은 느슨해지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드러낸다. 만족이라는 말은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얻는다. 느꼈다는 표현 뒤에는 이미 판단을 마친 시간이 놓여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이러한 판단의 과정을 마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판단이라는 절차를 감정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르는 편이 삶을 정리하기에 더 수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일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적당한 말로 묶어두는 방식이 덜 부담스러웠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하루를 기록하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정직함을 지키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끝내 외면하기는 어렵다.


기준이라는 전제


이러한 정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깊이 들여다보면, 기준은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기억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 시작점을 정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 아직 멈추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은 별다른 설명 없이 삶 속에 스며들었다. 이런 잣대는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감각에 가깝다. 질문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당연한 바탕으로 작동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되었다.


이 기준은 저절로 생겨난 감각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그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성적표로 평가받던 기억,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일터의 풍경,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무심히 반복되던 비교의 말들은 특정한 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요구는 거부감 없이 삶에 스며들었고, 마침내 스스로 세운 생각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형성된 기준은 하루를 마치는 순간마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개입한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이미 정해진 평가의 틀 안에서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기준이 만족과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익숙한 흐름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 믿었던 판단이 특정한 환경과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하루의 무게는 이전과 다른 결로 다가온다.


감정처럼 보이는 이유


만족이 감정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판단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루를 돌아보는 짧은 시간 동안 충분했는지 여부는 이미 가늠되고,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내려진 결론은 몸과 마음에 흔적으로 남는다. 긴장이 풀리며 숨이 고르거나, 원인을 짐작하기 어려운 피로가 어깨에 내려앉는다. 이런 신체 반응은 곧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서의 변화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이 드러나기 전에 판단은 이미 끝나 있다. 만족은 판단이 지나간 뒤에 남겨진 흔적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과정은 말로 정리되기 전에 몸에 먼저 새겨진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이 쉽게 멈추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는 상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반응은 흔히 감정으로 분류되지만, 그 바탕에는 하루의 가치를 따져본 결과가 놓여 있다. 판단의 속도가 빠를수록 앞뒤의 순서는 흐려지고,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로 단순화된다.


미뤄지는 현재


기준이 가장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하루가 끝나는 시점이다. 무엇을 느꼈고 어떤 장면이 남았는지보다, 하루가 정해둔 선에 닿았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때 기준은 점검의 도구를 넘어 하루의 의미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 기준은 점차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꾼다. 현재는 충분함을 증명하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상태로 여겨진다. 이미 지나간 시간조차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된다. 애쓴 날도 결과가 분명하지 않으면 쉽게 가벼워지고, 선택의 의미는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하루를 돌아보며 몇 줄을 남기려다, 결국 노트를 덮은 적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대부분 끝냈고, 약속도 지켰다. 특별히 어긋난 선택도 없었다. 다만 무엇을 적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헛되이 흘러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을 붙잡을 만한 문장이 보이지 않았다. 노트에는 날짜만 남았고, 그 빈칸이 하루의 전부를 대신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하루는 온전히 남지 못한다. 오늘은 늘 내일을 위한 과정으로만 쓰이고, 현재는 계속 뒤로 밀린다.


판단을 늦추는 태도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뚜렷한 실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삶을 흔들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하루를 마쳤다는 감각이 점점 희미해졌을 뿐이다. 기준은 여전히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 잣대를 견뎌야 하는 태도는 점점 버거워졌다. 그제야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따르고 있던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의 삶에 여전히 맞는가.


기준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삶을 대하는 속도에 변화가 생겼다. 모든 판단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던 습관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이다. 하루의 끝에서 곧바로 요약하고 평가하는 대신, 시간을 그대로 두는 연습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이전의 잣대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날들 속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실했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판단을 늦추는 시간은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 이어졌다.


남는 방식의 변화


이러한 변화가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성과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아니고,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루를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겼다.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의 결을 살피는 시선이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변화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루를 기억 속에 남기는 방식에는 분명한 흔적이 남았다.


이제 ‘만족’이라는 단어는 이전처럼 쉽게 불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말이 나오지 않는 하루를 곧바로 실패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만족을 느끼지 못한 이유를 마음의 부족함에서 찾기보다, 어떤 기준이 작동했는지를 먼저 살핀다. 만족은 판단의 과정이 지나간 뒤에 남겨지는 기록으로 남는다.


하루를 억지로 평가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밤들이 늘어난다. 화려한 표현이나 승리를 말하는 언어는 없지만, 불필요한 재단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충분하다’는 말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하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시간으로 남는다. 만족은 감정의 문제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삶을 재단하던 속도를 늦출 때, 판단의 모습으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시간은 다시 제자리를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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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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