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림

by 장순혁

종이에 그려진 새는 날지 못한다
그저 종이에 붙박힌 채
바람을 맞을 뿐

종이에 그려진 새는 걷지 못한다
그저 종이에 매인 채
햇살을 느낄 뿐

누군지 알 수 없는 이가 그린
그림 속에 갇힌 새에게
세상이란 자기가 그려진 종이다

얇디얇은 백지장에 그려진
세상을 살아가며,
아니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림에 불과한 것을,
새는 그저 날고 싶을 뿐이다
자기의 날개를 펼치고 싶을 뿐이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스며들어온다
살며시 종이를 품에 안고
창밖으로 나간다

새 그림이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그제야 새는 날 수 있다
먼 하늘 위를 활공하며 종이는 사라진다

구름보다 높은 곳으로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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