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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니 Oct 28. 2024

나의 8월은 노란색

좋든 싫든 노란색은 주위에 있더라

"오빠, 나 이러다가 드라마에서 처럼 몇 달 안 남았으니 마음의 준비하라고 하면 어떡해?"


남편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내 손을 꼭 잡고 같이 교수님 진료를 기다렸다. 이 진료 몇 시간 전, 난 혼자 울면서 남편한테 CT영상 소견이 이상하니 얼른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었다. 차에 타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말해준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이미 내용의 30%는 까먹고) 내용들을 남편한테 말해주고 엉엉 울었다.


'내가? 왜?'


그때나 지금이나 문득 드는 생각이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점심으로 먹었던 프렌치 프라이가 문제였으려나.


약 한 시간의 대기 끝에 교수님을 당일 만나 뵐 수 있었다. 남편의 친한 친구덕에 5분이라도 교수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최대한 빨리 PET CT를 찍자고 하셨고 일주일 후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다행인 것은 교수님이 보시기에 (영상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언뜻 말씀하신) 복막암은 아닌 것 같으니 우선 결과를 보자고 하셨다.


그게 오후 3시쯤이었으려나?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나오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이 됐다. 우선 며칠, 몇 달 정도는 더 산다는 확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남편한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기로 했던 여행 갈까? 어차피 검사받고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그렇게 우리는 쿨하게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값을 결제했고 원래 해놨던 호텔에는 가겠노라 확답을 보냈다. 당장을 살아야 했다.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어디라도 정신을 돌릴 데가 필요했다.



일본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너무 덥긴 했지만, 너무 더워서 정신을 온전히 한 곳에만 둘 수 없었다. 지금은 먹지 못하는 초밥, 회, 맥주 등등 열심히도 먹었다. 그때는 분명 이렇게 될 줄 몰랐었는데도 그냥 열심히 먹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의사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면 미쳤다고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과만 기다릴 수 없었다. 난 혹시나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남편도 여행 내내 화 한번,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이나 보고 싶은 것들을 잔소리 한번 하지 않고 함께 해주었다.


여행 마지막 날, 라멘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잠시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왔다. 별말 없이 돌아와서는 라멘을 먹고 다른 볼거리들을 향해 움직였다. 나도 그 전화에 대해 묻지 않았고 남편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은 알고 있다. 그 전화는 병원을 빨리 가게 해준 친구였다는 걸. 내가 암에 걸린 것은 확실하다고 말해줬다는 것을.



그렇게 난 여행을 다녀왔고, 예상했던 대로 암을 진단받았고, 서울로 병원을 옮겨 수술 날짜를 받았다. 수술을 하고 나니 마음이 어찌나 편하던지! 병원들을 다니며 교수님들의 소견들을 받을 때마다 난 너무 무서웠었다. 혹시나 수술을 못할까 봐 두려워했었는데 수술을 하고 나니 후련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계속 나한테 "긍정적"이라며 대단하다고 했다. 난 그저 나의 lowest까지 갔다가 천천히 올라오는 중인데. 그저 무언가 치료가 된다는 것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입원했던 내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유리병 안에 들어있던 복숭아는 나에게 매일 웃음을 선사했다. 밥도 맛없어서 많이 못 먹고 머리는 떡이 져서 지나가다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복숭아. 복숭아만큼은 정말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간수치가 안 좋아져서 혹시 "좋은 무언가"를 먹었냐고 물어보던 의사 선생님에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듯한 표정을 짓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혹시 복숭아.. 복숭아 먹으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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