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미국에 살던 난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에 놀러 와 어디로 여행을 갈까, 어느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7월엔 여름마다 만나 술자리를 가지던 형님들과 한 잔 하다가 건강검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야기가 생각나 7월 말쯤 난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8월이었고 난 개복수술 후 항암을 앞두고 있었다.
첫 항암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 8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지금은 쌀쌀한 10월이다. 3개월 전의 나는 유서를 써놔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자주 일기를 쓴다. 그 수첩 안에 아들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쓰는 간략한 편지들도 가끔 쓴다. 혹시나 그들과 오래 하지 못할까 봐. 미래가 짧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똑같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암치료가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하나도 몰랐다. 몇 개월 전, 암 진단과 수술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난관들을 헤쳐나갈 때 배웠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찾지 않기. 인터넷은 무서움을 배로 만들 뿐이다. (임신했을 때도 배웠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이랬던가?)
이제는 항암치료를 3번 끝냈고 중간체크를 위해 CT촬영도 끝냈다. 이 CT촬영에 대해서는 나중에도 글에 적겠지만, 첫 암진단 전에 찍은 CT촬영이 나에게 얼마나 스트레스였던지 이번엔 촬영하러 가는 길에서부터 배가 살살 당기더니 다 찍고 나서는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하여튼 동네 내과에 가보니 위경련과 장염이란다. 안 그래도 항암 중이라 모든 걸 조심하는 중인데 (혹여나 스케줄 꼬일까 봐) 왜 아픈 건지!
이 날 깨달았다. 난 정말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Anyways - 3주에 한 번씩 네다섯 시간 걸리는 항암을 위해 대구-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데도 이젠 도가 텄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한 후에 교수님 진료를 보는 것에도 익숙해져서 대충 모든 게 몇 시간 안에 끝날지 가늠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얼마나 여유로워졌는지 진료 보기 전 어디에서 맛있는 걸 먹을까 찾아보고, 진료 후엔 어느 동네로 구경을 가볼까 찾아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덕분에 항암 하러 가는 서울 나들이가 말 그대로 나들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 살던 광화문에 자주 가게 되는데 자주 가던 길, 초등학생 시절 등교하던 길, 그리고 애기 시절부터 가던 스파게티 맛집은 아직도 날 설레게 한다. 마음이 몽글몽글 구름 같다. 아닌가? 크리미 한 스파게티 같다. 내가 좋아하는 그 스파게티.
3개월 전,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매년 시부모님을 뵈러 여름마다 한국으로 들어오곤 하는데 이렇게 몇 개월 동안 눌러앉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국에 들어온 김에 했던 산부인과 검진에서 혹이 발견될 줄도 몰랐다. 그 산부인과 선생님도 그저 한국에 들어온 김에 CT촬영 한번 해보고 가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뿐, 그 혹이 무엇인지 모르셨다. CT촬영 후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선생님은 보호자가 없냐고 물으셨고 암이 많이 퍼진 상태인 것 같으니 하루빨리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날 당장 데리러 오라고 하곤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덜덜 떨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