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불안함은 미래에게 맡기자고 다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꽤나 붐비는 이 장소 중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려고 하자 다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을 가로질러서 갈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그것 조차 못하면 나는 병신인걸.
이어폰을 달팽이관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쑤신 후 노래를 최대 볼륨으로 켠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나는 내 양발의 위치와 간격. 양 팔의 속도에 신경 쓰며 걸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바보같이 걷는 한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른쪽 구석에서 시끄럽게 가십거리를 얘기하고 있는 4명의 아줌마들은 내가 걷고 있는 모습에 대해 떠들고 있는 걸까. 내 앞에 있는 대학생 정도 돼 보이는 저 남자가 웃고 있는 건 나를 보고 비웃는 게 아닐까. 아니. 나도 알고 있다. 결국 이런 건 피해망상에 불과하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 앞에 다다랐다.
손잡이가 어딘지 도저히 모르겠는 이 유리문은 나와 같은 사람들의 손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 나도 그 손자국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유리를 꾹 눌러 문을 열었다.
문 밖이라고 해도 결국엔 어딜 가든 이곳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빈 시간의 종착지는 언제나 이곳이다. 몇 명이 함께 있던. 누구와 함께 있던 우리는 결국 이곳에 갇혀버리기 마련인 것 같다. 이 망할 검은색 액체는 내 몸속을 흘러 언젠가 내 몸 전체를 검게 물들어 버릴 것 같다. 아. 아. 나는 그만 내 귀를 두고 와버렸다.
다시 그 장소로 걸어가기 시작한 나는 건물이 있는 왼쪽으로 얼굴을 39도 정도 돌렸다. 그 빌딩의 외벽에 비치는 나의 왼쪽얼굴은 어째선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런 얼굴에 보답하듯 나는 조금 더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두 팔은 과장하듯 휙휙 휘둘렀고, 눈썹을 밑으로 살짝 내려서 강하게 보이게 했다. 양다리의 간격은 중간 정도이나 빠르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장소의 앞에서 나는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보자니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멈춰있는 내 양팔과 양 발은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기죽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잃어버린 내 왼쪽귀는 이 안의 저 깊숙이 있을 텐데 나는 어떻게 살아남으면 좋은 걸까.
유리에 묻혀둔 나의 손자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소심하게 손을 유리에 대고 문을 열었다. 귀가 찢길 듯이 시끄러운 문에 달린 벨의 딸랑딸랑 소리. 아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 장소 안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 얼굴 위로 가있었다. 그 1초에 의해 내 얼굴은 산산조각이 났다. 잃어버린 나의 수많은 부위를 찾기 위해 바닥을 더듬더듬거렸지만 잡히는 건 한쪽 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