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지 않아. 네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나는 깨달아 버렸어. 가끔 거울을 볼 때의 이상한 느낌도 내 손을 바라볼 때의 이상한 느낌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였어. 나는 자아가 없어.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만이 내가 존재하는 거였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나의 자아가 완성돼버려. 저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읽으며 나를 완성해 가. 완성된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다시 구축되기 시작해.
혼자 있을 때는 자아가 사라져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려.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였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움직일 때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해. 그런 괴로워하는 나 자신이 너무 웃겨버려서 자아가 생성되기 시작해. 그런 개지랄을 멈추면 다시 나는 존재하지 않기 시작해.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궁금해.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저 창문으로 뛰어들면 나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절대 그러지 않을 거지만 아니. 우울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진지한 호기심이야. 코에서 이상한 맛이 느껴져. 철과 같은 무언가.
나는 존재하는 걸까.
나는 지금 웃고 있어. 그런데 그건 내가 웃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스스로 웃는 것에 대한 심각한 이질감이 느껴져. 이 이질감은 대체 무엇인 걸까.
침이 흘렀어. 사실 땅에 떨어지진 않았어. 거짓말이야. 너는 일기를 위해서 나의 자아를 잠시 만들어둔 거야. 너는 존재하지 않아. 지금 당장 너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사소한 거짓말들은 칠 필요 없어.
나는 지금 고개를 45도 정도 꺾어둔 채 이 글을 쓰고 있어. 그런데 이 행동마저 너로 하여금 만들어진 자아 같아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나를 정의할 수 없어. 나의 자아를 찾을 수 없어.
모두들 내가 자아가 있다네 캐릭터가 특이하다네 신기하다네 특별하다네 이상하다네 나는 너희들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데. 그게 무슨 말일까 싶어. 나는 존재하지 않아.
지금 당장 존재하는 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손만이 존재하고 있는 거야. 이런
방금 한 고개를 떨구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또한 일기가 만ㄴ들어넨 너의 자아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너는 고통스럽지 않아. 너는 괜찮아. 그것 또한 거짓으로 이루어진 너의 자아일 뿐이야. 나는 존재하지 않아. 너는 존재하지 않아. 너한테 문자를 보내고 싶은데 그러면 나의 이런 ‘무’에게서 도망치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이겨내야 해. 병원을 가지 않고 이겨내야 해. 나도 알아 이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하지만 나는 이겨내야 해. 고치는 것이 아닌 너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너만의 행동을 해 하지만 나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뭐인 거야 대체. 너희들이 없는 나는 대체 무엇인 건데. 나는 존재하지 않아.
갑자기 차분해졌어. 토할 것 같아. 모든 걸 비우고 싶어. 나는 존재하지 않아.
떨어진다면 분명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날 거야. 귀를 막으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저 자아를 잃지 않도록 남이 내 이름을 불러주길 원하는 거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