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딱 한 번만 더 참아볼까?

‘우리는 왜 참는가’와 범죄학:사회통제이론

by 어보경

한 대 칠까?

가끔은 참기 힘든 순간이 온다. 상사의 갑질, 이유없는 악플, 자존감을 갉아먹는 비아냥을 들었을 때…

“한 대 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를 되내이며 또 참아주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참을까? 법이 무서워서일까, 벌금이 아까워서일까, 아니면 양심 때문일까?


인간은 처음부터 선한 존재일까?

사회통제이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는가라는 명제를 뒤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통제이론은 다른 범죄학 이론과 달리 '사람들은 왜 규칙을 준수하는가?'를 연구한다.


범죄학자 알버트 J. 라이스(Albert J. Reiss)는 1950년대에 보호관찰을 받던 청소년들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규범을 어기는 이유가 '내 안의 통제력'과 '사회가 주는 통제력'이 모두 약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쉽게 말해,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도 없고, 누군가가 ‘멈춰!’라고 말해줄 관계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라이스는 특히 ‘순응’—즉 규칙을 지키는 평범한 행동—이 사실은 특별한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언제든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지만, 어떤 힘이 우리를 붙잡고 있을 때만 그걸 ‘참는다’는 것이다.


이후 등장한 트래비스 허쉬(Travis Hirschi)는 이 통제의 ‘힘’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태생부터가 일탈적 존재라고 보았다. 그의 사회유대이론(social bond theory)은 “왜 범죄가 발생하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를 중심 질문으로 삼는다. 허쉬는 유아를 ‘동물’에 비유하기도 했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본능대로 행동(예를 들면, 강아지나 닭은 배가고프면 아무런 죄책감없이 다른 동물들의 먹이를 뺏어먹는 것 같이) 하는 유아의 모습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라, ‘억제(통제)’를 배우는 과정이다. 즉 타인의 시선, 규범, 감정, 관계 속에서 점차 ‘참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허쉬는 인간이 범죄를 억제하게 만드는 사회적 연결고리를 ‘사회유대(social bond)’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가 네 가지 유대로 설명된다고 보았다. 첫째는 애착(attachment)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범죄를 참는다. 부모, 친구, 선생님, 연인과의 애정적 관계는 그 자체로 통제 장치가 된다. 둘째는 전념(commitment)이다. 범죄를 저지르면 잃을 것이 많을수록 사람은 신중해진다. 취업, 학업, 대인관계, 명예처럼 투입한 자원이 많을수록 법을 어길 유인은 줄어든다. 셋째는 참여(involvement)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관계를 유지하느라 바쁜 사람은 범죄를 계획하거나 실행할 여유조차 없다. 마지막은 신념(belief)이다. 법은 지켜야 한다는 가치, 타인에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이 우리를 멈추게 만든다.


결국 범죄를 억제하는 건, 법 이전에 사람이다. 타인을 향한 애정,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 시간을 빼앗는 일상, 그리고 양심이라는 이름의 내면화된 규범. 이 유대가 끊어질 때 우리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잃을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사회통제이론의 한계

하지만 사회통제이론은 한계도 분명하다. 이 이론은 ‘정상가족’을 전제하고 있다. 안정적인 가정, 보살피는 부모, 소속된 학교가 있어야만 유대가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공동체, 또는 관계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범죄 억제를 위한 기반 자체가 약하다고 전제한다면, 이 이론은 특정한 삶의 조건을 이상화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산 후 여성의 사회복귀가 아이의 애착을 감소시키고 결국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극단적인 논리까지 갈 수 있다.)


또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설명이 약하다. 왜 어떤 사람은 유대를 형성할 기회를 얻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했는가? 빈곤, 차별, 교육 격차 같은 사회적 요인을 개인의 유대 수준으로 환원하면, 책임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에게 전가된다.


마지막으로, ‘통제’ 자체가 항상 선한가? 실례로 '애착'이라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나쁜친구에 대한 애착으로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쉬쉬되는 암수범죄들도 있다.


우리는 법이 무서워서 참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 잃고 싶지 않은 가치, 감정의 연결 속에 있다. 법은 멀지만, 관계는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다시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