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괜찮을까?

목표와 수단, 그리고 긴장에 대한 범죄학:아노미와 긴장이론

by 어보경

“저 형은 사기를 쳤는데도 벤츠 끌고 다녀. 솔직히 부럽다.”


어느 날 친한 동생이 툭 던진 이 말을 듣고,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나도 수사를 하며 잡아들인 피의자들을 보며, “누구들은 돈 참 쉽게 버네”라며 신세한탄을 했던 적이 있다.


범죄를 부러워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됐다. 돌이켜 보면 그 말이 단순한 시기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들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성공이 정당하다면, 그 과정도 무조건 정당화되는 걸까?”


1. 아노미는 무정부 상태가 아니다

우리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아노미(anomie)’라는 말은 마치 ‘무정부 상태’나 ‘무질서’를 떠올리게한다. 사실 이 개념을 처음 정립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훨씬 정교한 의미를 부여했다.

뒤르켐이 말하는 아노미는 사회가 개인의 욕망을 조절해주지 못할 때 생기는 규범의 공백 상태다. 특히 급격한 경제성장기나 사회적 혼란기, 사람들은 더 큰 욕망을 갖게 되지만, 무엇이 ‘적절한 욕망인지’,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진다. 이때 아노미가 발생한다.


뒤르켐의 시선은 ‘왜 극단적인 선택(예: 자살)을 하는가’에 닿아 있었지만,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은 그 문제를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사회구조와 문화적 목표(예: 특정 사회의 성공 지표 등) 사이의 괴리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2. 목표는 같은데, 수단은 불평등하다

머튼은 미국 사회의 특징을 관찰하면서, 모두가 ‘성공(특히 금전적)’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교육, 경제적 자원, 기회)은 계층과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목표와 수단간의 괴리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동유형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봤다.


머튼이 제시한 다섯 가지 적응유형은 다음과 같다.

1) 동조형(conformity): 사회가 제시한 목표와 수단 모두를 수용한다. (예: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겠다.)

2) 혁신형(innovation): 목표는 수용하지만, 수단은 거부하고 비합법적 방법을 선택한다. (예: 돈을 많이 벌고는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범죄를 저지르겠다.)

3) 의례형(ritualism): 수단은 고수하지만, 목표 자체는 포기한다. (예: 형식주의적 공무원, 기계적 반복의 삶)

4) 도피형(retreatism): 목표도 수단도 포기한다. (예: 약물중독자, 노숙자, 은둔형 인간)

5) 반역형(rebellion): 기존의 목표와 수단을 모두 거부하고,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시도한다. (예: 혁명가, 극단주의자)


이 적응유형은 우리가 흔히 보는 다양한 일탈 및 범죄 유형을 설명하는 하나의 틀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혁신형은 “목표는 지켜졌지만, 수단이 뒤틀린” 상황을 해석하는 데 유용하다.


3.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머튼이 사회 구조와 문화 목표 간 괴리를 통해 범죄의 '구조적 조건'을 설명했다면, 애그뉴(Robert Agnew)는 여기에 ‘감정’을 끌어들인다. 그는 단순히 제도적 실패나 기회의 박탈을 넘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 상태(negative affective states) - 예를 들면 분노, 실망, 우울, 두려움 - 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일반긴장이론(General Strain Theory; GST)은 사람들이 특정한 **긴장 상황(strain)**에 놓일 때, 그에 따른 감정 반응이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애그뉴는 특히 다음 네 가지 상황을 범죄의 긴장 유발 조건으로 제시했다.


1) 긍정적 목표 달성의 실패

- 예: 취업을 위해 수년간 스펙을 쌓았지만 끝내 면접에서 탈락한 경우.

2)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disjunction)

- 예: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부모 배경이 전부인 현실을 마주했을 때.

3) 긍정적 자극의 제거(removal of positively valued stimuli)

- 예: 믿고 의지하던 가족이 갑작스레 사고로 사망하거나, 애인과의 이별 등 상실 경험.

4) 부정적 자극의 등장(presentation of negative stimuli)

- 예: 반복적인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부모의 학대 등 불쾌한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하지만 애그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위와 같은 긴장 상황이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질 때 실제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1) 불공정하다고 인식될 때

- 예: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운 좋게 ‘끼워넣기’ 된 사람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을 때.

2) 정도가 심각하다고 여겨질 때

- 예: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반복되고 모욕적인 왕따나 폭력일 때.

3) 낮은 사회적 통제와 연결될 때

- 예: 가족, 학교, 지역사회가 아무도 개입하지 않고 방치한 상태.

4) 압박 속에서 범죄를 통해 얻는 이득이 있을 때

- 예: 돈이 급한 상황에서 사기 한 건만 성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을 때.


또한 일반긴장이론은 단지 개인이 직접 겪은 경험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애그뉴는 긴장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개인이 아닌 주변 사람의 고통이나 사회적 분위기 자체도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가 억울하게 퇴학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간접적으로 긴장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곧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이를테면 '학교에 가면 또 폭력을 당하겠지?' 같은 ‘기대되는 긴장’ 역시 범죄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느끼는 구조적 긴장, 예컨대 빈곤, 소득불평등, 차별이 만연한 동네처럼 ‘거시적 긴장’이 누적된 공간에서는 범죄율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확대된 시각은 범죄를 단지 한 개인의 충동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감정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물론 이 이론에 대한 비판도 있다. 긴장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 범죄와 관련된 구체적 긴장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 그리고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부정적 사건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를 설명하는 하나의 유용한 틀로 쓰이고 있다.


4. 범죄는 예외인가, 예고된 결과인가

사람들은 범죄를 보면 “왜 저런 짓을 하지?”라고 묻는다. 하지만 머튼과 애그뉴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가진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충분했는가?”

“그가 겪은 긴장과 상실은 어떤 방식으로 누적되었는가?”


이 질문은 범죄를 정당화하진 않지만, 그 원인을 보다 다층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금전적 성공이 유일한 가치처럼 포장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시각이 범죄의 예방과 사회구조 개선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5. 서울로만 가야 하는 이유는 누가 정했을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이 속담은 성공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말에 반문을 던져야한다.

“정말 모로 가도 되는 걸까?”

“서울이 전부여야만 하는 이유는 누가 만든 걸까?”


목표는 다양할 수 있어야 하고, 수단은 공정해야 한다.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적지 외에도, 다양한 삶의 경로가 존중받는 사회라면 범죄로 가는 길 역시 줄어들지 않을까? 범죄학 이론들은 단지 범죄자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밀어붙이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거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