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골목길은 정말 위험할까?

위험한 장소와 범죄학 : 일상활동이론과 범죄패턴이론

by 어보경


배우 권상우 주연의 말죽거리잔혹사(2004년 개봉)의 한 장면

“옥상으로 따라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이 대사는 단순히 옥상으로 가자는 말이 아니고 ‘맞짱’ 즉, ‘누가 이기는지 싸워보자’는 말을 담고 있다. 이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학교 옥상은 일탈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옥상에서 싸움을 벌이고, 누군가는 맞고 돈을 빼앗긴다. 학교라는 제도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 보통의 학생들은 ‘옥상은 조심해야 해’라는 인식을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다양한 매체 속 이러한 장면들은 범죄발생을 ‘공간(또는 장소)‘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범죄학자들의 이론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일상 속에서 생기는 범죄의 기회 : 일상활동 이론

1979년, 코헨(Cohen)과 펠슨(Felson)은 ‘일상활동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을 발표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구조 변화를 분석하며, 범죄는 범죄자 개인의 성향 뿐만아니라, 일상활동 속에서 범죄 기회가 증가함에 따라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범죄는 세 가지 요소가 같은 시공간에서 만날 때 발생한다.


첫째, 동기화된 범죄자(motivated offender)가 존재하고,

둘째, 적절한 대상(suitable target)이 있으며,

셋째,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감시자의 부재(absence of capable guardian)가 발생할 때,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밤늦게 인적이 드물고 조명이 꺼진 골목을 아이 혼자 걷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아이는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대상이다. 꺼진 조명은 자신이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범행듀 숨겨줄 수 있다. 인적도 드물어 범행을 막아줄 사람도 없다. 범죄를 저지르기 좋은 최적의 환경은 범죄자가 나쁜 마음을 나쁜 행동으로 옮기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범죄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에 의해 발생한다. 이론은 나아가, 대상의 가치(Value), 고정성(Inertia), 가시성(Visibility), 접근성(Access)이라는 요소들(VIVA)을 통해 어떤 대상이 더 범죄에 취약한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이론은 핫스팟(policing hotspots), 불심검문(stop and frisk), 문제지향적 경찰활동(problem-oriented policing) 같은 형사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다 .


도시 구조가 만드는 범죄 : 범죄패턴이론

브랜팅햄(Brantingham & Brantingham) 부부는 1978년 ‘범죄패턴이론(Crime Pattern Theory)’을 발표했다. 이들은 범죄가 일정한 시공간적 패턴을 따른다고 보았으며, 범죄 발생에는 도시의 구조와 이동 경로 같은 물리적 환경 요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패턴이론은 세 가지 공간 유형을 제시한다.

- 범죄생산지(crime generators): 원래 범죄와 무관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우연히 범죄 기회가 만들어지는 곳. (예: 놀이공원, 대형 쇼핑몰, 역 주변)

- 범죄유인지(crime attractors): 범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의도적으로 범죄가 발생하는 곳. (예: 마약 밀거래 지역, 불법 도박장)

- 범죄조장지(crime enablers): 감시가 없거나 규범이 무너져 범죄를 방치하는 공간. (예: 빈집, 버려진 공터 등)


이 이론은 사람들이 매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행로(route)’와 사람들이 모이는 ‘교차점(node)’이라는 구조를 통해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단순히 ‘누가’ 범죄를 저지르는지가 아니라, ‘어디서’ 범죄가 반복되는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이론에 근거한 형사정책 역시 비판을 받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예측경찰(predictive policing) 활동이다. 과거 범죄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지역에 경찰을 집중 배치하는 방식인데, 이는 범죄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일부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흑인이나 이민자 밀집 지역이 과잉 감시 대상이 되어 인권 침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미국의 PredPol 서비스를 검색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감시자는 꼭 경찰이어야만 할까 : 착한 오지랖

위에 살펴봤던 이론들 모두 공간에 대한 ‘감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감시자(capable guardian)는 꼭 경찰이나 CCTV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위해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한다. ‘못 보던 꽃이 피었네, 여름이 왔나보다’하는 마음. 이 마음을 범죄학에 녹인다면, ‘같은 동에 사는 꼬마가 낯선 사람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벗어 날 때, 그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소한 관심과 걱정. 이런 따뜻함이 사회의 안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오지랖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서는 것을 말하는데, 과거에는 오지랖을 귀찮은 관심 정도로 여겼다면, 요즘에는 사생활을 침범하는 무례라고 치부되고 있다. CCTV가 범죄의지를 약화시키거나, 범인을 추적하고 검거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행 중인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현장을 지켜보던 이웃들의 도움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위해 다시금 착한 오지랖을 부려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