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용'과 '계층이동의 사다리' 그리고 범죄학: 하위문화이론
우리 사회에서 한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지금은 어떨까? 과거에 비하면 개천에서 나오는 용이 현저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개천 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한 사람, 한 가정, 한 사회의 계층이 더욱더 공고히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간의 계급이 정말로 사라졌을까?
동네마다 그리고 학교마다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조금씩 다르다. 사실, 한 사람이 태어난 환경은 그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양과 질을 크게 좌우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나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은 불평등할 수 있지만, 사람까지 불평등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범죄학(criminology)에서는 이런 환경과 계급(또는 계층)의 문제를 ’하위문화이론(subculture theory)’으로 설명한다. 이 이론은 주류 사회에서 제공하는 기회(예: 교육환경)와 가치로부터 배제된 집단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게 되고, 그 문화가 때로는 범죄나 일탈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이나 기준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인정받고, 하나의 훈장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론의 개념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아래 하위문화와 관련된 몇가지 이론을 예시와 함께 설명하고자 한다.
* 요즘 흔히 사용되는'서브컬쳐(Subculture)'라는 단어가 범죄학(청소년비행)에서 태동된 단어라는 점이 이 이론들의 차밍포인트랄까...?
때때로 모범적인 학생보다 반항적이고 규칙을 어기는 학생들이 학교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 측히 특정 학생 집단은 sns에 올라오는 폭력적인 챌린지를 공유하고, 그걸 실제로 따라하는 행위가 '쿨하다' 내지 '멋있다'고 여겨진다.
앨버트 코헨(Albert Cohen, 1918-2014)은 1955년 『비행하는 소년들: 갱의 문화(Delinquent boys: The culture of the gang)』에서 주류 사회의 교육과정과 가치가 중산층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하위계급(lower-class) 청소년들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이들은 ’지위 박탈(status deprivation)’과 ‘지위 좌절(status frustration)’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명문고에서 전교 1등을 다투는 아이들과, 지방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는 학생이 같은 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 코헨은 이러한 현실에서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험’을 반복한 아이들이, 스스로 '저 가치는 틀렸다.', ‘우리가 옳다’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학교를 무시하거나 교사에게 대드는 것이 오히려 멋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이 주는 교훈은 단순히 비행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정하게 도전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 방과후 돌봄 강화,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청소년 복지 확대 등이 이런 배경을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
엘리야 앤더슨(Elijah Anderson, 1943~)은 1999년 『거리의 법칙(Code of the Street)』에서 하위문화가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품위가족과 거리가족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품위가족(decent families)은 법과 도덕을 지키며, 교육이나 직장을 통해 삶을 안정시키려는 가족을 말한다. 반면 거리가족(street families)은 주변 환경이 너무 열악해 법이나 도덕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인 가족이다. 이들은 폭력이나 과시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며, 거리의 규칙에 따라 자녀를 키우게 된다. 이는 존중받기 위한 생존 전략이지만,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을 더욱 강화하여 결국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처럼 환경의 차이가 낙인으로 이어지면, 계층의 벽은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거리가족에 속한 사람이라도 항상 거리의 법칙만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윌리엄 줄리어스 윌슨(William Julius Wilson, 1935~)은 1987년 『진정으로 불리한 계급(The Truly Disadvantaged)』에서 빈곤 지역의 높은 범죄율과 빈곤 문제의 원인은 인종이 아니라 계급과 기회의 결핍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게토(ghetto)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진다면, 하층 계급은 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고, 이는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근처에 도서관, 체육시설, 학원이 없고, 부모 역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이 똑같이 자라서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을 갖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윌슨은 이런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주거환경 개선, 지역 재개발 시 공공문화시설 확충, 교통망 연계 등을 통해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정책 방향이라고 말한다.
*게토(Ghetto):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킨다. 윌슨은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저소득층이 거주하며, 범죄발생 다발지역을 게토라고 표현하였다. 윌슨은 범죄가 계층 문제, 특히 흑인 사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히스패닉 등 전반적인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문제에서 대두된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흑인사회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내 흑인들은 앤더슨을 더 좋아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1979년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인 생활 양식조차 계급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그가 제시한 ‘아비투스(habitus)’ 개념은 특정 계급에서 형성된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이 사람들의 삶에 내면화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계급 차이를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으로 작용하여 계층이동을 어렵게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커피’라는 단어도 누군가에겐 집 앞 편의점 캔커피고, 누군가에겐 호텔 라운지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준 스페셜티 커피일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계급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상징적 폭력이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단지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차원을 넘어, 문화 접근권 자체의 평등성을 고민하게 한다.
월터 밀러(Walter Miller, 1920-2004)는 1958년에 하위계층 청소년들의 주요 관심사를 분석했다. ‘말썽(trouble)’, ‘강인함(toughness)’, ‘교활함(smartness)’, ‘흥분추구(excitement)’, ‘체념(fate)’, ‘독립성(autonomy)’ 같은 관심사들이 그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범죄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들면, 누군가가 학교폭력을 저지르고도 친구들 사이에선 ‘인싸’처럼 존중받는 경우, 혹은 일탈행위를 하거나 선생님이나 어른한테 덤비는 것이 용기 있다고 인정받는 분위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밀러는 비행청소년들이 자신이 느낀 소외감과 불공평함을 이런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밀러의 이론은 ‘규칙을 어긴다’는 겉모습이 아니라, 왜 그런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하위문화는 항상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과거에는 ‘오타쿠’ 문화가 사회적으로 무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들의 전문성과 집요함이 인정받으며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기성문화는 때로 ‘꼰대’ 문화라 불리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주류문화와 하위문화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문화, 다양한 가치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자세이다. 모두가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될 때 사회 전체의 건강성과 다양성이 살아나고, 결국 계층 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문화를 범죄의 원인으로 돌려 탓을 한다거나 범죄집단으로 낙인찍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층이동의 문을 열어두고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용이 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태어난 곳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그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느냐에 달려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미래는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