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범죄와 범죄학:낙인이론과 수치이론
“쟤 좀 이상하지 않아?”
“아, 저 사람? 예전에 사고 한 번 쳤었잖아. 조심해”
이런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이유는 대단하지 않다.
어색한 옷차림, 늦은 유행 감각, 말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고, 사소한 사건 하나에 휘말렸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 순간, 그 사람은 무언가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된다. 즉 하나의 ‘행동’이 한 사람 ‘전체’를 의미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언가 나누길 좋아한다.
내편과 네편, 인싸와 아싸(아웃사이더),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범죄자와 비범죄자.
이러한 구분짓기는 생각보다 빠르고, 가혹하다. 당사자가 자각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우리’와 ‘저들’의 선을 그어놓는다.
정작 우리는 다름의 ’기준‘을 누가 정한건지 묻지 않는다.
그 질문의 중심에 있는 이론이 있다.
바로 낙인이론(Labeling Theory)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범죄’라 부르는 것, ‘비정상’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문제’라 부르는 것들이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사람들의 ‘반응’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낙인이론은 일탈을 개인의 성향이나 도덕성에서 찾지 않는다. 일탈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서 출발한다. 즉, ‘일탈’로 규정된 행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회학자 프랭크 탄넨바움은 이를 “악의 극화(dramatization of evil)“라 불렀다. 아이의 장난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 아이 자체를 ‘문제’로 보기 시작한다.
이후 하워드 베커는 『아웃사이더』에서 일탈을 이렇게 정의한다. “일탈은 규칙을 위반한 행위가 아니라, 규칙을 만든 사람들이 그것을 일탈로 규정할 때 생긴다.”
에드윈 레머트는 일탈을 1차적 일탈과 2차적 일탈의 두 단계로 나눴다. 어떤 사람이 1차적 일탈행위를 했을 때, 그 행위로 인하여 자신에게 ‘낙인’이 찍힌 경우, 낙인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 ‘낙인’을 받아들여 2차적 일탈로 나아간다는 자기충족적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개념도 제시했다.
•1차적 일탈(primary deviance):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규범 위반
•2차적 일탈(secondary deviance): 낙인이 붙고, 그 정체성을 스스로 수용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탈
예를 들어, 한 청소년이 수업을 빠졌다고 하자. 그것만으로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반복된 지적과 경계, 그리고 “문제아”라는 낙인이 따라붙기 시작하면, 그 청소년은 그 기대에 부합하듯 행동하게 된다. 낙인은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낙인이론은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사회학자 에드윈 슈어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조차, 낙인에 의해 진짜 범죄자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없는 범죄란 성인 간의 동의에 의한 성매매, 마약 소지, 일부 대마초 사용, 심지어 성적 지향이나 젠더 표현 등은 본래 피해자가 없거나, 타인에게 명확한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것을 위험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행위자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 결과, 이들은 실질적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감시받고, 구금되며, 배제된다. 결국 낙인을 받아들이고 2차적 일탈(범죄)로 나아간다.
[*필자의 견해가 아닌 이론에 대한 설명입니다.]
낙인이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우리는 범죄를 통제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통제를 위해 범죄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고전주의 범죄학(classical criminology)은 인간을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범죄는 이익이 크고, 처벌이 작을 때 발생한다고 본다. 이 이론에서 파생된 것이 바로 억제이론(deterrence theory)이다.
억제이론은 범죄를 줄이려면 처벌은 빠르고, 확실하며, 강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범죄의 대가를 충분히 인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인이론은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형벌은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응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까지 규정하는 힘을 가진다. ‘문제아’라는 인식이 결국엔 그 사람을 범죄자의 길로 나아가게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인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학자가 존 브레이스웨이트(John Braithwaite)다. 그는 『범죄, 수치, 그리고 재통합』에서 수치(sham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한 사람이 일탈행위를 했을 때, 그 사람을 비난하는 방식을 수치주기라고 이야기하며, 수치주기의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 낙인적 수치(Stigmatizing shame): 행위뿐 아니라 행위자를 통째로 비난하고 배제하는 수치 방식으로, 일반적인 ‘낙인’과 같은 의미다.예컨대 “넌 틀렸고, 넌 우리와 어울릴 자격이 없어.”같은 방식이다.
• 재통합적 수치(Reintegrative shame): 행위는 비판하되 행위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수치 방식이다. 예컨대 “네 행동은 잘못됐지만, 넌 여전히 우리 안에 있어. 우리가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게” 같은 방식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을 제안했다. 피해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가해자는 책임을 지고, 서로 관계를 회복해야 하며, 공동체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낙인을 찍는 대신, 회복의 가능성을 중심에 둔 사법 시스템. 브레이스웨이트는 이것이 범죄 억제보다 더 강력한 예방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낙인이론은 처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처벌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이름 붙이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쟤는 원래 그래.” 이 말은 설명이 아니라, 규정이며, 때로는 예언이다. 우리가 만든 그 예언이 누군가의 현실이 되지 않게,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