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은 왜 맨날 억울하다고 할까?

피해자 코스프레와 범죄학:중화기술이론

by 어보경

“때린 건 미안한데, 그 사람이 먼저 욕했잖아요.”

“저도 피해자예요. 저도 얼마나 참았는데요.”


뉴스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의 말투는 어쩐지 낯이 익다. 폭행, 학폭, 데이트폭력 사건에서도 자주 반복된다. 자기 행동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지만, 마치 억울한 피해자처럼 말한다.

그럴듯한 감정과 사정을 앞세워, 잘못의 무게를 흐리는 것이다.


이처럼 가해자가 피해자의 언어를 흉내내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태도, 우리는 흔히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부른다. ‘코스프레’라는 말에 이미 조롱과 냉소가 담겨 있지만, 이 현상은 단순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사실 범죄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행동에 주목해왔다.

1950년대에 이미 사이크스(Sykes)와 마짜(Matza)는 여기에 ‘중화기술(Techniques of Neutraliz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두 학자는 청소년 범죄자들을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범죄자들이 전혀 양심이 없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 죄책감을 누르기 위해 자신만의 심리적 기술을 동원하고 있었다. 마치 ‘합리화된 변명’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정당화의 기술’은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 책임의 부인(Denial of Responsibility).

“아니, 쟤가 자꾸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거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실수나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는 논리다.


둘째, 피해자의 부인(Denial of the Victim).

“맞을 만한 짓을 했잖아요.”

피해자가 정말 피해자인지에 의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피해자가 ‘벌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셋째, 가해의 부인(Denial of Injury).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에요?”

“장난이잖아요.”

내가 한 행동이 그렇게까지 큰 해를 끼친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피해는 있지만 ‘진짜 피해’는 아니라는 식이다.


넷째,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기(Condemnation of the Condemners).

“너네는 다를 줄알아? 너네도 내 상황이면 똑같이 했을걸? 너네는 날 욕할 자격 없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나 제도를 문제 삼는다. 내가 아니라 ‘너희가 더 문제’라는 전형적인 화살 돌리기다.


다섯째, 더 높은 목적에 호소(Appeal to Higher Loyalties).

“나는 친구를 지키려 한 거예요.”

“우리 가족이 당했는데, 그냥 참고만 있어요?”

법이나 도덕을 어긴 이유가 ‘더 큰 가치’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의리, 책임감, 정의 같은 단어가 여기에 자주 동원된다.


나무위키에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피해자인 척 하며, 사회적 동정을 얻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

그런데 이 설명은 중화기술이론과 거의 겹친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단순한 감정 과잉이 아니라, 죄책감을 무력화하고 책임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말 기술이다. 다시 말해, 죄를 지었지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 친구도 이렇게 노는거 좋아했어요”라고 말할 때, 그는 가해의 부인과 피해자의 부인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또 “요즘은 별것도 아닌 걸로 고소하고 난리잖아요”라는 말은 비난자에 대한 비난에 해당한다.


이런 식의 언어는 피해자를 깎아내리는 동시에, 가해자의 책임을 흐리고 자신을 피해자처럼 포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말의 전략이 아니라, 도덕적 경계를 흐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이런 말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내 잘 못이 아니야. 그 사람이 먼저 잘못했어.”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어.”

“그게 이렇게까지 심각할 일이야?”


이런 생각들은 때때로 우리를 죄책감에서 구해주지만, 이런 패턴에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처럼 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억울함이 다른 사람을 더 아프게 했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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