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와 범죄학:사회학습이론과 차별접촉이론
미국 워싱턴주립대 사회학자 존 라우브(John Laub)와 로버트 샘슨(Robert Sampson)은 1993년 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전과자 부모를 둔 자녀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보다 범죄에 연루될 확률이 통계적으로 높다고 보고했다. 영국 범죄학자 데이비드 패링턴(David P. Farrington) 역시 2002년 캠브리지 소년발달 연구를 통해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범죄자 아버지를 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범죄자가 될 확률이 일반 가정의 아이보다 2.4배 높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범죄자의 자녀는 결국 범죄자가 된다”는 결론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법은 연좌제를 폐지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정환경과 범죄의 연결고리를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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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자 로널드 에이커스(Ronald Akers)는 1973년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을 통해, 인간의 범죄와 일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다고 설명했다. 에이커스는 네 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했다.
첫째는 ’차별적 접촉(differential association)’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얼마나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폭력을 자주 목격하거나 경험하면 폭력적 대응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둘째는 ’정의(definitions)’다. 어떤 행동이 정당하거나 옳다고 믿는 인지적 틀이다. 예를 들어 “맞아야 말을 듣는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태도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근거가 된다.
셋째는 ’모방(imitation)’이다. 부모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하는 모델이 된다. 폭력적인 부모나 또래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학습한다.
넷째는 ’차별적 강화(differential reinforcement)’이다. 특정 행동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거나 처벌받지 않으면, 그 행동은 강화되고 습관화된다. 폭력적 행동으로 갈등이 해결되거나 상대가 물러나면, 폭력은 문제해결의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사회학습이론이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네 요소가 긍정적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폭력적인 환경, 올바른 행동 모델, 긍정적인 보상을 통해 인간은 폭력이 아닌 평화적 방식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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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덜랜드(Edwin H. Sutherland)는 1939년 ’차별적 접촉이론(Differential Association Theory)’을 통해 범죄가 유전이나 병리적 문제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학습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A person becomes delinquent because of an excess of definitions favorable to violation of law over definitions unfavorable to violation of law.”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법을 준수하는 태도보다 많기 때문이다.)
서덜랜드는 ’법을 위반하는 태도(definitions favorable to violation of law)’가 단지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법 위반을 정당화하거나 도덕적으로 중립화시키는 심리적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남자는 맞으면서 크는 거야”,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같은 태도들이다.
또한 범죄는 마음만 먹는다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술(techniques of committing crime)도 학습해야 가능하다. 소매치기 방법, 카드 복제법, CCTV 사각지대 활용법 등은 범죄자 간의 구체적인 접촉과 정보 공유를 통해 전수된다.
다만 서덜랜드는 이런 접촉과 태도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변 환경이 바뀌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배우게 되면 범죄 성향 역시 충분히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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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뇌과학 연구들은 범죄자에게서 전두엽 기능 저하, 편도체 이상반응, MAOA 유전자 결함 등 생물학적 특성을 발견하고 있다. 브루너(Hans Brunner)의 1993년 네덜란드 연구는 MAOA 유전자 결핍이 공격성과 충동 조절 장애와 연관 있다고 밝혔고, 아드리안 레인(Adrian Raine)은 전두엽 피질 저하가 충동성과 공감 결핍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생물학적 특성이 범죄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브루너도 환경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보호의 부재가 없으면 유전자 결함이 범죄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뇌는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환경과 학습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소성(plasticity)’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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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제임스 펠런(James Fallon)은 자신의 책 『괴물의 심연(The Psychopath Inside, 2013)』에서 우연히 자신이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뇌 구조를 가진 것을 발견했다. 펠런은 사이코패스적 뇌 구조를 가졌지만 안정적인 가정환경과 긍정적인 인간관계, 학문적 활동을 통해 폭력 성향을 억제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는 총을 장전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환경이다.”
이 말은 인간의 범죄적 성향은 결코 유전자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환경과 인간관계를 통해 얼마든지 조절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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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자 부모를 둔 자녀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는 사실이다. 하지만 라우브와 샘슨의 연구는 그 데이터를 가지고 전과자의 자녀를 낙인찍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일인지 경고한다. 그들은 『Crime in the Making』에서 청소년기에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 중 많은 수가 성인이 되어 범죄에서 벗어난 과정을 추적했다.
범죄 중단의 배경에는 군 복무, 결혼, 직업, 공동체 참여 같은 구체적인 삶의 전환점이 있었다. 이들은 단지 나이를 먹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책임과 관계가 삶의 궤적을 바꾼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삶의 경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구조적 전환점은 범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통계는 과거의 경향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한 개인의 가능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범죄를 유전처럼 말하는 단편적 통계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범죄가 학습된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습은 언제든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범죄는 유전자가 아니라 학습된 환경을 통해 전해진다. 우리가 범죄자의 자녀들에게 보내야 할 시선은 경계나 의심이 아니라, 그들이 놓인 환경을 바꿔주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범죄는 학습된다. 하지만 비폭력과 공감, 책임 역시 학습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과 만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것을 배우며 살아야 한다. 결국 범죄의 고리는 학습을 통해 끊어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