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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Nov 05. 2024

2. 1호 엄마는 인생을 2회 차 사는 사람 같아.

영화 어바웃타임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조차도.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내 인생에 최고의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영화가 될 것이다.


 내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한 동네 언니가 있다. 여기서 "동네 언니"는 내가 어렸을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언니가 아닌, 첫째 1호가 유치원 때 친하게 지냈던 "딸의 유치원 친구의 엄마"이다.

 살아온 환경과 하는 일도 다르고 나이도 6살이나 차이가 나 처음엔 친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뒤늦게라도 하는 악바리(?) 근성이 있어 얘기를 하다 보면 곧잘 통한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하고 임용고시를 보았고, 이 언니도 직장생활을 하다 전공을 바꾸어 다시 공부를 하고 뒤늦게 변호사가 된 케이스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 교육 가치관이 달라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할 때 죽이 잘 맞는다. 언니가 집에서 뭘 하려고만 하면 그때마다 남편이 제일 반대하며 말린다는 점이다. 결국 남편 험담으로 친해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남편에 대한 눈물 콧물 섞인 진한 사랑은 깔려 있다. 결혼하고 나서도 본인이 원하는 걸 하게 해 줬다는 고마움과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준 것에 대한 동지애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가도 선 넘는 남편 흉에 맞장구는 적당히 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 언니에게서 톡이 왔다.


언니:

어머니 몇 시에 마쳐요??

내가 AA역에 있을 건데 혹시 스치듯이라도 볼 수 있는 건가 해서 톡 남기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일정 소화하시면서 톡 주세요

 : 넵         

 

 평일에는 서로의 일 때문에 잘 만나지 못하는데 오늘은 모처럼 그 언니가 쉬는 날이라 내가 퇴근하고 내리는 지하철역까지 마중 온 것이다. “혹시”라는 표현을 썼지만 “지금 만나”라고 읽는 것이 맞다. 뭔가 고민거리나 할 이야기가 있다는 신호이다.

 지난밤 언니는 딸 2호에게 생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교사의 입장에서 보기에 본인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딸에게 있었는데 그때 딸의 얘기를 잘 들어주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엄마를 아직도 원망한다는 내용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결국 직장일이 바빠서 아이들을 잘 못 챙겼던 지난날의 죄책감이 아이들 일에 관한 일이라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워킹맘이라면 이런 죄책감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있잖아 그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지?

모른다고 하면?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그땐 이렇게 할 수 있어?

그럼 괜히 얘기해서 우리 애 미워하고 왕따 시키는 거 아니야?

남편은 얘기하지 말래.. 그냥 참고 넘어가면 그냥 넘어갈 일이라고 그러다가 애 왕따 당한다고...


언니 불합리한 상황에서 얘기할 수 있어야죠.

오히려 아무 말 안 하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 행동할 거예요.

그리고 이 얘기했다고 미워할 거 같으면 진즉에 미워했어요.

무엇보다 언니 이것 때문에 밤잠 못 자고 힘들어했잖아요.

딸도 원하고. 얘기하세요. 상대편은 아예 상처 준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수도 있어요. 나중에 딸 2호가 두고두고 이 얘기할 거예요. 그때 엄마는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언니: 그래 알았어 잘 정리해서 얘기해야겠어. 알았어 고마워. 아... 떨린다.


그리고 오늘은 그 후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지하철역까지 마중 온 것이다.  결론은 나름 상대방에게도 사정이 있었지만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서 잘 해결됐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이야. 나 오늘은 발뻣고 잘 수 있겠어.”

우리 딸도 이렇게 엄마가 얘기해 준 것에 대해 좋아하더라고 오랜만에 나칭찬 받았잖아. 그리고 우리 딸이 무슨 일 생기면 또 너한테 물어보래.  “넌 어쩜 가끔 보면 인생을 2회 차 사는 애 같아.”


어느 날 아침 너무도 생생한 꿈을 꿨다. 20대 후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꿈이 깨고 꿈인걸 알면서도 그 찝찝하고 허무한 감정이 가시질 않았다.

꿈속에 난 70대 후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눈떠보니 70대 노인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이렇게 빨리 시간이 갔나.. 무엇보다 생각만 하고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그렇게 마음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럴 땐 인생2회차 처럼 살수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오늘을 일부러 여행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내가 20년 후 지금으로 시간 여행을 왔다면?

내 나이 60대에 40대로 시간 여행 오면 현재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

아이들이 웃을 때 같이 함께 웃고 사소한 농담도 하면서 이해 안 가는 사춘기 행동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겠구나. 방좀 안 치우고 침대 구석에서 쓰레기가 나와도. 각종 물건들 정리 안 하고 없다 해서 반나절동안 물건 찾게 해도.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를 입어도. 아는 거 틀렸다고 해도. 이번에 이거 알았네. 전보다 성장했네. 지금 아니면 언제 알겠어라고 해줄 수 있겠다.

이제는 몸의 컨디션도 조금씩 안 좋아지는 60대가 되면 지금이 얼마나 찬란하고 예쁠까...

나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삶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시간은 흘러 꿈을 꿨던 시간으로부터 10년 뒤 여름이 되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아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제대로 배웠다.


to be continued


p.s 영화 어바웃 타임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어떠한 순간을 다시 살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완벽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를 소재로 가족, 사랑,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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