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부릅뜨고 삶과 죽음을 관찰하기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52

by 서강

곤돌라와 관

베네치아 운하를 떠다니는 곤돌라 위에 놓인 검은 상자. 괴테는 그 상자를 보며 관을 떠올렸다고 했다. 요람 같은 곤돌라 위에 죽음의 상징이 놓여 있는 풍경. 삶과 죽음이 한 폭의 그림 안에 공존하는 순간을 포착한 그의 눈이 놀랍다.

우리는 모두 영생할 것처럼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가 기다릴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대통령이든 노숙자든, 재벌이든 일용직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가야 할 그곳이 있다.


남편의 죽음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2시간 전까지 "퇴근하고 또 전화할게" 말하던 그 사람이 이제 대답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인생이 허무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모든 날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어버렸다.

세상과 신에게 원망이 가득했다. 차라리 병상에서라도 시간이 있었다면, 못다 한 말들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랑한다"는 말, "고마웠다"는 인사라도 건넬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욕심이었다. 병상에서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과연 나을까. 갑작스러운 이별이 주는 충격과 병상에서의 긴 이별이 주는 고통. 둘 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가 선물처럼 안긴다. 어제 내린 비가 세상의 먼지를 모두 씻어낸 듯하다.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하늘이 맑게 갠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뛴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이 얼굴을 스치는 감촉,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순간, 좋아하는 음악이 귓가에 울려 퍼질 때의 전율. 죽음이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싶다. "고맙다"는 인사, "사랑한다"는 고백을 아끼지 않고 싶다.


괴테가 곤돌라 위의 상자를 보며 관을 떠올린 것처럼, 우리도 일상 속에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다. 내일이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오늘은 분명히 여기 있다.


창가에 놓인 화분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언젠가는 떨어질 꽃잎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햇살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KakaoTalk_20250617_074920271.jpg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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