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민자로 살아보니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듣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 12년 동안 두 번의 이민을 했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한국식 악센트가 강해서 늘 “Sorry, sorry”를 입에 달고 살았다. 슈퍼마켓에서 점원에게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그냥 가버리거나 못 들은 척, 무시당한 적도 많았다. 영어와 관련된 실수와 에피소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귀여운 영어 에피소드 하나를 들자면, 밴쿠버 유학생 시절, 유명하다는 칵테일을 마셔보고 싶어서 친구 다섯 명과 함께 바에 갔다. 나는 미국의 ‘Bloody Mary’ (블러디 메리)를 캐나다에서는 ‘Caesar’(씨저) 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 있게 서버에게 “Can I get a Caesar?”라고 주문했다. 친구들은 각자 ‘Gin and Tonic’(진앤토닉), ‘Mojito’(모히토) 같은 칵테일을 시켰다. 잠시 후 서버가 칵테일 네 잔과 가위를 가지고 왔을 때, 나는 당황한 나머지 친구들에게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고, 가위로 안주를 자르며 분위기를 모면했다.
그렇게 영어가 크게 늘지 않은 채 12년을 보내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학식 있고 교양 있는 교수님들과 동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내 부족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심으로 내 말을 듣고자 했고, 내가 말한 것을 다시 확인하며 천천히 이야기해 보라고 격려했다. 그들의 태도 덕분에 영어 실력은 그대로였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느껴졌다. 첫 학기에 첫 발표를 했을 때, 나는 교수님께 “제 발표 때문에 애를 먹으셨을 것 같아 죄송하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나도 너처럼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오히려 나를 부러워해 주셨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나는 높은 직책을 맡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학원 졸업자가 관리직이나 매니저 레벨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높은 직책에서 일하며 느낀 점은, 직원들이 내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덕분에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느꼈지만 아직도 슈퍼마켓에서 혹은 외부일을 볼 때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사실, 영어 실력이 조금 많이 늘었지만 발음은 여전히 미국인과 다르다. 며칠 전에도 내가 “skilled nursing facility”를 (간호사가 상주하는 요양시설) 말했는데 상대방은 “secretary nursing facility”로 들어서 오해가 생긴 일이 있었다. 내 미국인 친구들 몇 명을 붙잡고 여러 번 실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여전히 한국식 발음을 하고, 여전히 영어를 버벅거리지만, 긍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내가 영어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내 영어를 걱정하기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을 보내는 당신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요?”
이미지: A photo taken at The Boat House in White Rock, Vancouver. 벤쿠버 와이트 락에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