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YES
나는 시간강사입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때는 2012년이죠. 교도관인 남편을 따라 아는 이 하나 없는 강원도 영월군으로 이사를 했을 때였어요. 셋째가 15개월쯤 되어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할 즈음, 쌍둥이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고 셋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래봐야 놀이터, 마트, 도서관이 전부였지만요. 영월 오기 전에 그림책지도사 강좌를 흥미롭게 들었던지라 도서관에 그림책 분야의 강좌가 있는지 알아봤더니 그런 강좌는 없다고 말하면서 담당자는 오히려 제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림책지도사 자격증이 있으시니 강의를 해보시는 건 어때요?"
"네? 어떤 강의를요?"
"봄에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북스타트가 시작되거든요. 자원활동가 두 분이 필요한데 한 분뿐이라 해주시면 좋겠어요. 강사비도 지급돼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강사의 길에 첫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경험도 없는데 낯선 도시에서 덥석 "Yes"를 말할 만큼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무모한 사람이라 가능했던 일이었지요. 나는 일단 도전부터 해보는 편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일단 시작해야 경험도 생깁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셋째딸도 북스타트 대상이었으므로 데리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첫 책은 <짖어봐, 조지야>
강아지 조지는 엄마가 짖어보라고 할 때마다 '멍멍' 짖는 대신, '야옹', '꽥꽥', '꿀꿀', '음매' 소리를 냅니다. 걱정이 된 엄마는 조지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의사 선생님은 조지 입에 손을 깊이 집어넣어 고양이, 오리, 돼지, 소를 꺼내지요. 조지는 그제야 '멍멍'소리를 내고 엄마는 기뻐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가는 사람들에게 조지를 자랑하고 싶었던 엄마가 기대를 품고 말하지요. '짖어봐, 조지야.' 조지는 어떤 소리를 냈을까요?
이 재치 있는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딱 어린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엇이든 쉽게 영향받고 동화되는 것은 어린이들의 특징이지요. 유아기 어린이는 자주 듣는 말을 배우고 보는 것을 흉내 냅니다. 조지처럼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고양이, 오리, 돼지, 소, 그림을 만들어 코팅해서 소맷부리가 넓은 카디건 왼쪽 소매에 집어넣었습니다. 왼손은 조지가 되었지요. 엄마가 '짖어봐, 조지야.' 할 때마다 왼손 손가락을 크게 벌려 짖는 모습을 흉내내고 다른 동물들 소리를 내었지요. 야옹~하면 소맷부리 깊숙이 오른손을 집어넣어 고양이를 꽥꽥~하면 오리 코팅 그림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나도 유아들도 엄마들도 즐거워한 수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미숙함에 완성도를 높여주기 때문이지요.
2015년 1월 영월을 떠날 때까지 3년간 참 많은 것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림책작가 중심으로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그림책 전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갖게 되었고, 북스타트를 통해 그림책에서 느끼고 배운 것을 나누는 실험적인 기회가 되었지요. 그리고 '동화 먹는 여우'라는 독서모임을 통해 동화와 그림책을 비롯 인문&사회&정치 분야까지 다양한 독서와 토론을 이어가며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웠습니다. 또한 도서관 프로그램 담당자와 반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독서상담치료사 자격증과정, 수채화반, 퀼트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아기 때문에 민폐를 끼칠까 봐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낮시간의 강좌는 대부분 자녀를 키우고 나온 엄마들이라 어린 자녀를 돌보는 엄마들에 대해 무척 관대하거든요. 중요한 건 엄마, 즉 나의 각오와 그를 뒷받침할 체력입니다. 집 밖에서 아기를 돌보려면 더 많은 에너지와 감정이 소모되기 마련이니까요. 강의시간에 아기가 마음껏 휘젓고 돌아다니게 둘 수 없으니, 아기 띠로 안는다든지 간식을 준다든지 크레용을 손에 쥐어준다든지 잠깐 바람을 쏘이고 온다든지 하는 여러 회유책을 써가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거든요. 배움의 기쁨이 소모되는 에너지보다 크다면 해볼 만한 일이지요.
셋째가 2013년 4살이 되던 해 3월, 오빠들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얼마 후, 넷째가 태어났습니다. 넷째는 생후 1개월부터 엄마의 배움의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독서모임과 바느질모임에 다녔고요. 그래서일까요? 영특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아이가 핑계가 되어 엄마 또는 아빠의 배움과 성장을 지연시키지 말고 아이와 함께여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도 함께 배우게 될 것입니다.
나의 강사인생은 이렇게 내 아이와 함께 그림책으로 시작(북스타트)되었고 10여 년의 시간 동안 수천여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였던 90대 어른까지 만나는 강의로 이어졌습니다. 매주 연재마다 다양한 강사 경험 에피소드를 하나씩 나누려고 합니다. 다음 이야기에도 동행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