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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영 Good Spirit Nov 08. 2024

엄마가 되는 것과 엄마로 사는 것

일상 一想

 "너 어릴 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고 했어. 그냥 현모양처 말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맨발로 뛰어가서 안아주는 그런 엄마." 엄마가 말했다. 어린 것이 '현모양처'라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의아하면서도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그냥 전업주부로 살겠다는 말 같아서 내심 실망스러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는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빠와 매일 전쟁을 치르느라 바빴고 5남매에게 하나하나 애정을 표현할 만큼의 여력이 없었던 것을 어린 나는 잘 몰랐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가 될 때까지 내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어쩌면  '맨발로 뛰어나와 안아주는' 그런 환대를 몹시 받고 싶었던 어린 나를 대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할 때, 난 아이 엄마가 될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허나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제 아무리 컸어도 엄마로 사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겨우 2키로가 넘는 쌍둥이 아들은 38주가 넘어 태어나 폐성숙이 되었기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잠을 푹 자지 못하고 2시간마다 깨어 울며 보채어서 안고 먹이고 달래주어야만 다시 잠이 들었다. 엄마가 처음인 나는 아빠가 처음인 배우자와 셀 수 없는 잠못 이루는 밤들로 지쳐갔다. 아이들의 체중이 늘고 강건해질수록 나는 약해지고 말라갔다. 두 아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갔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 오랜시간 엄마가 되는 것을 염원했던 나조차 막상 엄마로 사는 것은... 버거운 시기였다. 나는 어린시절 목격했던 엄마의 힘겨움과 무기력함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엄마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라는 것을. 적어도 나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과 살았으므로 우리는 잘 협력하며 힘든 시기를 함께 버틸 수 있으니까.

 아들 쌍둥이가 28개월이 되었을 때 세째딸을 낳았고 그 딸이 33개월이 되었을 때 네째딸을 낳았다. 2남 2녀란 말을 들으면 다들 애국자다 뭐다 국가에서 포상을 줘야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시당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맨발로 뛰어나와 안아주는' 그런 환대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가옥구조상 아이들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다 보니 맨발로 뛰어나갈 일은 없지만, 나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거의 매일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부둥켜 안기도 하면서.

 밤잠을 그렇게 못자던 아들 쌍둥이는 이제 17세가 되었고 아빠보다 훌쩍 컸으며 한번 자면 절대 깨어나지 않는 단잠을 잔다.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아 무례한 말들과 행동으로 나를 열받게 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엄마로 사는 것을.


23. 6. 6. 서귀포시 쇠소깍에서 투명카약 탄 후, 근처 하효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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