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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1st-stories

by 조은영 GoodSpirit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 한번 들은 이야기는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주머니에 담고 꽁꽁 싸매어 벽장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이. 그 아이는 어느덧 자라 장가갈 날을 잡은 새신랑이 되었다. 그러나 긴긴 세월 동안 빛 한번 보지 못하고 벽장 속 이야기 주머니 안에 갇힌 이야기들은 독기를 잔뜩 품은 귀신이 되어 신랑에게 복수할 4단계 계획을 세운다. 확실히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멀리 새색시가 있는 마을까지 길을 떠날 새신랑이 목마를 때 시원한 옹달샘이 되고, 출출할 참에 길가에 먹음직스러운 산딸기가 되고 청실배가 되어, 한입 베어무는 즉시 독이 퍼져 죽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 단계가 모두 실패하면 실패하면 독뱀이 되어 방석 밑에 숨어있다가 색시에게 맞절하는 순간, 콱! 물어버리겠다는 것. 신랑은 이 철저한 복수의 희생자가 되었을까?


아니다. 이야기 속에는 항상 조력자가 있다. 현실과는 달리 옛이야기 속에서는 애쓰지 않아도 항상 짠! 하고 나타난다. 머슴은 신랑 방에 군불을 때다가 벽장 안에서 소곤소곤 들려오는 이야기들의 밀담을 모두 듣고 신랑을 따라나선다. 그리고 그 모든 치명적인 돌발상황들을 해결해 내는 사람은 신랑이 아닌 머슴이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의 주동인물은 머슴인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서사는 신랑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결국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꼈던 신랑은 이야기를 가두어 풀지 않으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 이제 신랑의 선택은? 신랑은 이야기꾼이 되어 만나는 이들에게 이야기 주머니 속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낸다. 그 후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세상 곳곳에 흩어졌으며, 우리는 지금도 옛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들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며 만들어질 것이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독이 됐지만. 결국 같은 맥락이다. 이야기는 묵혀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나의 이야기들을 묵히지 않고 풀어내기로 했다. 내 이야기는 다른 주머니에 담을 수 없고 오롯이 내 머릿속, 마음속, 손끝, 발끝, 온몸 구석구석에 담겨 있던 것들이라, 이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자유로워지면 나역시 좀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이 브런치북에는 그렇게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책, 노래, 영화, 그림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그 이야기가 당신만의 또 다른 버전으로 탄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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